이 나라 진실의 역사 ▣ 진실의 역사▣

내 블로그에 들어오신 여러분들께 우리의 진짜 역사를 알리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 합니다. 제가 그 동안 어렵게 힘들게 알아 낸 옛 역사이고 진실의 역사 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 아는 사람들 극소수입니다.
내 블로그 제일 위에 비록 현대판 통합삼한 신라(統合三韓 新羅)영토를 넣어 둡니다. 2001년6~7월 사이에 “미쮸 왕” 아저씨께서 세계지도에 표기 해 주었습니다.지도(地圖) 파랑 색깔로 넓게 표기 한 것이 1300년 전 통합삼한 신라 영토 입니다. 이란이 당(唐)나라 영토입니다.여러분들께서 많이 알려 주세요. 잘 못 된 역사 때문에 망국(亡國)의 길로에 서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스캐너로 입력해서 그림판에서 파랑 색깔로 진하게 통합삼한 영토를 표기 했습니다.

◈◈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 서문(序文)의 첫 어절 내용입니다.
“““성현(聖賢)이신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은 때에 땅의 유리한 상태를 주지 않음이요, 지형(地形)의 유리한 상태는 인심(人心)의 화합(和合)만 같지 못하다 라고 하였다. 충의(忠義)를 얻은 자는 하늘이 도우고 도덕(道德)을 잃은 자는 하늘이 도우지 아니 하니, 이것은 하늘의 순리이다. 그러고도 정의롭게 충성(忠誠)과 효도(孝道)를 하는자는 난리(離)에 있어 전란(戦乱)에 나아가지 않아도 반드시 승리 할 것이라고 말씀하였다.””” 이 뜻은 군사병법서(軍事兵法書)이고, 다른 응용 학문에도 쓸 여 질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발로 뛰는 역사를 했고요. 발로 뛰는 군사병법(軍事兵法)을 알아내었습니다. 즉,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해서 알아 낸 것입니다.

오래전에 저희 집을 찾데요. 정확히 몇 년도인가 생각이 나지 않지만, 대략 1998년 쯤 KBS1아침마당에서 외세에 강한 전설적인 후예가 남쪽섬에 살고 있다면서요.그 집은 찾아서 선조대대로 해 온 업적은 보상 해 줘야 된다고 하데요.
선무원종공신녹권 (宣武原從功臣錄券) 서문(序文)은 보통 일반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입니다. 이거 읽고 다 크게 소문내세요. 외세침략에 강한 집안을 찾았다고요.

 선무원종 1공신(宣武原從 一功臣) 이순신,권율,원균,임해군, 정원군 부, 순화군 부,인성군 공,의창군광 달성위 서경주, 해숭위 윤신지, 동양위 신익성, 당원임 지중추, 부사 송언신, 풍원부원군 류성룡,전병사 곽재우,좌찬성 김천일, 신 도승지 신흠, 영의정 윤두수,좌의정 김명원,우의정 심희수, 정 김완,증 도승지 고종후, 오성부원군 이항복, 주부 김희방, 군수 허균 이상 이정도선무원종 1공신(宣武原從 一功臣)께서 너희 집 국가난리(離)막은 거견적서 빼 내라고 하데요.
八世 장왕(莊王) 내 선조께서 국호개칭 대가국 지(國號改稱 大駕國 之)인데, 영토을 크게 확장하고 가락국(駕洛國)에서 대가국(大駕國)이라고 국호개칭을 합니다. 내가 보아서는 八世 莊王 내 선조께서 백제(百濟)를 멸망시키고, 국호개칭 대가국 지(國號改稱 大駕國 之)라고 합니다. 세 번째 국호개칭(國號改稱)은 9世 숙왕(肅王) 내 선조께서 금관국 십오백년 이(金官國 十五百年 以)로 명칭이 바뀝니다. 가락국(駕洛國)은 단일 국가로 충청도 금강 아래로 부터 현재 일본 영토가 가락국(駕洛國)입니다.

◈2000년 7월 말 일본에서 지금 한국에서 가르치는 가야연맹국가(伽倻聯盟國家)를 그대로 삽질 퍼가서 일본과 합세하여, 가락국 (임나가라) 본부가 일본에 있었다고 주장 했습니다. 왕족 직계 장손인 내가 밑도 절도 없는 대마도에서 가장 가까운 경남 거제 일운면 지세포성(知貰葡城) 400년 전 임진란 때 최전방이고, 선무원종1등공신 훈련원 첨정 김희진 (宣武原從 一等功臣 訓鍊院 僉正 金希璡) 내 선조께서 굳건히 지킨 지세포성(知貰葡城)터에서 살고 있습니다.
十世 양왕(讓王) 함께 손자(孫子)인 김서현(金舒玄)란 내 선조를 데리고 작은 신라(新羅)로 갔습니다. 작은 신라(新羅)로 갔어, 十二世 김서현(金舒玄) 내 선조(先祖)께서 첫눈에 반한 여자가 만명낭주(萬明娘主) 입니다. 가락국(駕洛國)의 마지막 이신 양왕(讓王)내 선조와 손자 김서현(金舒玄) 내 선조와 다시 가락국(駕洛國)으로 돌아와서 김서현(金舒玄) 내 선조께서 신라(新羅)의 만명낭주(萬明娘主)를 잊지 못해 나처럼 끙끙 앓다가, 양왕(讓王) 내 선조께서 시름 하는 모습을 알게 된 이후 신하들과 어쩔 수 없이 회의에 들어갑니다. 그러니까요 가락국(駕洛國)이자, 대가국(大駕國)이자, 금관국(金官國)은 전쟁(戰爭)에 의해서 신라(新羅)에 의해 합병이 된 게 아닙니다. 삼국시대가 없었습니다. 김유신(金庾信) 내 선조께서는 변한, 진한, 마한 이 세개 삼한국(三韓國)에서 뿔뿔이 수많은 나라들이 흩어져 있는 나라들을 통일(統一)했다는 뜻으로 업적에 통합삼한(統合三韓)이 됩니다.  상기 시키는 건데요. 김유신(金庾信)께서는 삼국통일(三國統一)한 적이 없습니다.
 13세(十三世) 김유신(金庾信)내 선조께서는 실제로 외동입니다. 김유신(金庾信) 내 선조께서 친 동생이 없으며, 그리고 “나라를 위함은 충(忠)만한 효(孝)가 없으니, 저기 나가서 공(功)을 세우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즉, 누구를 파리 목숨처럼 여기지 않았습니다.
동생 김흠순과 조카 반굴과 관창은 역사 소설입니다.
그리고 김유신(金庾信) 내 선조의 장인 어른이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입니다.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셋째 딸님이 지소부인(智炤夫人)입니다.

일본 임나가라가 아님, 일본도 거대한 단일국 가락국이었습니다 . 김유신(金庾信) 내 선조 업적 삼국통일 쓴 놈이 나라 팔아 먹은 이완용의 조카손자 이병도이었습니다.  나라 팔아 먹은 이완용의 조카손자 이병도 친일 역사학자가 삼국통일 아래
나라 역사 나라땅까지 팔아 먹어 치운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김유신 내 선조 진짜 통일 명칭은 통합삼한(統合三韓)이었습니다. 김유신 내 선조는 졸장부가 아닙니다. 김유신(金庾信) 내 선조께서 통합삼한 할 때 섬 가락국(현:일본)에서 병력을 많이 데리고 왔었습니다.  

다른 "김해 김씨"들은 김유신(金庾信) 내 선조 아들을 무려 5~6명을 기록하면서 모두가 높은 벼슬자리에 올라갔다고 하든데요. 김유신(金庾信) 내 선조(先祖) 밑에 아들은 삼형제입니다.
 十四世 김삼광(金三光) 내 선조께서 통합삼한(統合三韓) 과정 중에 이손 당 원좌 무중랑장(伊飡 唐 援左 武中郞將)란 벼슬로 당 나라 군대를 지휘하면서 적이 아니 우군으로 만들어서 통합삼한(統合三韓)이후 신라(新羅)로 다 귀화 시킵니다.즉, 자력적인 병력을 지휘를 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김원술(金元述) 작은 선조께서는 소판(蘇判)이라는 벼슬로 김유신(金庾信) 내 선조 밑에 졸졸 따라 다니는 심복입니다. 셋째 김원정(金元貞)막내 내 선조은 벼슬은 커녕 집에 지소(智昭) 할머니 하고 집을 지킵니다. 즉, 오고 갈 때는 없는 피난민들 보호합니다.

통합삼한 신라(統合三韓 新羅)에서 지금에 분단 된 국가들 한국,북한,일본,중국,태국,미얀마,몽고,인도,베트남,캄보디아,싱가포르,방글라데시아,네팔,부탄,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카자흐스탄외 북극 시베리아 및 지금의 러시아 쪽의 절반은 통합삼한 신라 영토(統合三韓 新羅 領土)의 본 실체 입니다. 즉, 삼국(三國)이 아닌 삼한국(三韓國)에서 분리 된 많은 국가들을 합친 것이 바로 통합삼한(統合三韓)입니다. 야유타국(阿踰陀國) 공주(公主) 허황옥(許皇玉)은 내 시조 조모(始祖 祖母)입니다. 야유타국(阿踰陀國)은 인도에 있으며,야유타국(阿踰陀國)은 삼한국(三韓國)에 분리된 하나의 국가 입니다.
 960년에 신라 마지막 진성여왕을 한명을 두고 밑에 신하들에 권력 내분 패권 싸움에 들어 갑니다. 무방비(無防備) 상태에 당(唐)나라 침략(侵略)~위로 진성여왕 한명 두고 권력 싸움 했든 날강도 신하(臣下)들은 산들로 다 도망 쳐 버리고요. 뜻있는 극소수의 분들이 중원대륙에 모여서 고군분투(孤軍奮鬪)를 해서 막다가 막 다가 넓은 대륙은 못 지켜 내고, 오늘 날  한반도(韓半島) 이남을 두고 쓸린 아린 눈물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고려개국(高麗開國)을 했습니다. 그런데 내 선조(先祖)는 적은 극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선봉을 나서서, (唐)나라 침략 막아 내고, 고려개국 공신(高麗開國 功臣)보다 큰 뜻으로 고려개국 원훈(高麗開國 元勳)이 됩니다. 二十三世 김상좌(金商佐) 내 선조께서는고려개국 원훈(高麗開國 元勳)이며, 唐나라 침략 막아 내고 고려(高麗) 간판(看板)까지 달아주고 왕의 자리까지 넘겨주었습니다. 즉,한반도(韓半島)와 일본(日本)을 두고 고려(高麗)를 개국(開國)합니다. 오늘 날 통합삼한 신라(統合三韓 新羅)에서 분단 된 국가(國家)들입니다. ““한국,북한,일본,중국,태국,미얀마,몽고,인도,베트남,캄보디아,싱가포르,방글라데시아,네팔,부탄,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카자흐스탄외 북극 시베리아 및 지금의 러시아 쪽의 절반이 통합삼한 신라 영토(統合三韓 新羅 領土)이었습니다. ””후삼국(後三國)이 없었습니다.

"신라 무덤의 비밀은?"..중앙아시아 고분 본격 조사
국립문화재연구소 카자흐스탄 '카타르 토베 고분군' 1차 발굴
연합뉴스 | 입력
2015.09.22 10:36 중형 고분에서 나온 금제 귀고리.
<<문화재청 제공>>
카타르 토베 고분군. <<문화재청 제공>>

중형 고분에서 나온 금제 귀고리. <<문화재청 제공>>

올해 발굴조사한 소형 고분. <<문화재청 제공>>

국립문화재연구소 카자흐스탄 '카타르 토베 고분군' 1차 발굴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신라 돌무지덧널무덤과 돌을 쌓아 만든 중앙아시아 초원 적 석계(積石系) 무덤 사이의 관련성을 찾기 위한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 7∼8월 카자흐스탄 고고학연구소 아스타나 지소와 함께 카자흐스탄 남동부 '카타르 토베 고분군'에 있는 고분 2기를 발굴했다고 22일 밝혔다.


카타르 토베 고분군은 톈산(天山) 산맥 근처의 해발 2천300m 고원에 있으며, 중대형 무덤 약 25기가 12∼13기씩 두 줄로 배치돼 있고 소형 무덤 30여기도 한 줄로 늘어서 있다. 현지어로 카타르는 '일렬', 토베는 '언덕'을 뜻한다.


이 조사는 고대 사회의 문화 교류 양상과 발전 과정을 밝혀 한반도를 둘러싼 '고대 문화 네트워크'를 복원하기 위한 것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와 카자흐스탄 고고학연구소가 처음으로 함께 진행했다.


올해 조사는 고분군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중형 고분 1기와 소형 고분 1기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조사단은 중형 고분의 경우 의 길이가 25m가량인 정사각형 봉분과 묘역의 경계를 표시하는 석렬(石列)로 구성됐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이 무덤은 땅을 파서 나무덧널을 설치하고 그 위에 통나무 4겹을 뚜껑처럼 올려놓은 뒤 흙으로 높이 2m 정도의 봉분을 만들고 돌로 덮어 조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분은 이미 도굴된 상태여서 적은 양의 금제 귀고리와 구슬, 청동 팔찌, 토기가 출토됐으며, 수장자의 골반과 다리뼈가 확인됐다.

올해 발굴한 소형 고분은 지름 12m가량, 높이 1m인 원형 무덤으로 구조는 중형 고분과 비슷하며,내부는 도굴로 심하게 훼손돼 토기 조각만 나왔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내년에 카타르 토베 고분군에 대한 제2차 발굴조사와 몽골 알타이 지방의 파지릭 무덤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조사를 통해 신라 돌무지덧널무덤과 비교할 수 있는 중앙아시아의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며 "연구 성과가 축적되면 아시아 고대 문화 교류의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당연히 신라 무덤이 생길 수 밖에~~~
통합삼한 완벽하게 하고, 국경지대에 신라 땅이었다는 뜻으로 표기 했음.
이 나라 한국에서 친일파 진단학회 매국노들을 독립유공자로 만든 국가보훈처는 없어져야 된다. 특히, 나라 팔아 먹은 이완용 조카손자 이병도와 그 친척들을 다 잡아 죽일 것이다. 이완용은 나라 팔아 먹고, 이완용의 조카손자 이병도는 조잡스럽게 역사 왜곡시키면서 이 나라 역사 땅까지 팔아 먹어 치웠습니다.김유신 내 선조 삼국통일 아래 욕되게 했고 졸장부 만들었고, 후삼국이라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과거 역사 적으로 통일 단 한 번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二十三世 김상좌(金商佐) 고려개국 원훈(高麗開國 元勳) 이신 내 先祖께서는 唐나라 침략(侵略)도 막아내고요. 왕권(王權)까지 양도하였습니다. 그런데 歷史에서 빼 먹었습니다.  일단은 이 나라 김해김씨로 인해 사기가 죽은 당(唐)나라 中 武 將軍의 후예집안을 찾아내었습니다. 이젠 다시 넓은 통일을 원한다면 함께 힘을 싣고 밀어들이겠습니다. 지금 한국 같은 나라는 전쟁으로써 침략 하기는 식은 죽은 먹입니다.

솔직히 글을 올리는 뜻인데요. 지금 한국에서 이름 다음으로 붙는 성(姓)들은 대 부분이 각파(各派)가 붙어 있어, 사회 조직 폭력 집단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일은일덕(日恩日德)도 모르고요. 성전구공(成載具功)모릅니다. 일본에서 생즉동심(生則同心), 사즉일일(死則一日)을 할 겁니다. 한국 사람들은 지켜 줄 때에 한 순간이지요. 돌아서면요. 잃어버리는 망각의 동물들입니다. 손자병법(孫子兵法)을 해석하면요. 웃깁니다. 손자(孫子)가 할아버지한테 싸우는 기술을 가르칩니까? 군(軍)에서 작전(作戰)을 세우기 때문에요. 군사병법(軍事兵法)이라고 해야 됩니다. 이번에는 완전히 세계(世界)를 통일 시킵시다. 내가 통합삼한 신라 속국 중국 북경(베이징)에 갔을 중국 야망이 세계일통(世界一統)이었습니다.  내가 그 동안 올린 위에 글들을 살펴보세요. 그리고 나는 중국이름 발음으로는 “진쎄유”입니다. 현재 일본 쪽에서는 정보전이 빠르니까요. 내 찾기는 쉽습니다. 대마도(對馬島)와 해상 직선거리로 47.9km에 남, 동해 쪽에 한국도로 끝나는 지점에 살고 있습니다. 군사병법 인변전술 (軍事兵法 人變戰術) 닛폰(日本) 애들한테 써 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인조이재팬에 다른 한문을 쳐 볼 겁니다. 어떻게 한문의 글이 바뀌는지요. 확인차원에서요.



그 동안 남 몰래 선행을 진짜로 많이 했습니다.(헌혈 한 번 하면,한 사람 목숨 구한다기에 1990년에 첫 헌혈해서 2000년까지 21번 헌혈했습니다.) 이것보다 더 많이 선행을 해 왔습니다. 

 2001년에 6~7월말 까지 나와 함께 생활한 중국 “미쮸왕 아저씨”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 할 때가 되었습니다. 작년에 다시 중국 대련읍 대련리에 살고 있을 겁니다. 고등학교 선생입니다.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과 13세(十三世) 김유신(金庾信)내 선조와는 둘도 없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고 가르쳐 주데요. “미쮸왕 아저씨”는 중국에 제자(弟子)들이 많습니다. 더욱이나 내 집 하고는 끊을 레야 끊을 수 없는 1300년 전 통합삼한 신라(統合三韓 新羅)
14世 김삼광(金三光) “이손 당 원좌 무중랑장(伊飡 唐 援左 武中郞將) 내 선조(先祖)밑에 슬하에 부하 (部下)로 있었든, 당(唐)나라 중 무장 군(重武 將 軍)의 직계 후예(直系後裔) 분이라고 하데요. 당(唐)나라 군사(軍事)에서 신라(新羅)로 귀화한 집입니다.

그리고 2001년에 배우 고소영씨의 전 소속사 MP엔터테이먼트로 보낸 한문으로 통합삼한 신라(統合三韓 新羅)에서 분단 된 9개국을 쓴 필체는 내 필체가 아닙니다. 미쮸왕 아저씨 필체 입니다. 그 뒤로 며 칠 후에 미쮸왕 아저씨께서 통합삼한 신라(統合三韓 新羅)에서 분단 된 영토(領土)의 지도(地圖)를 세계지도(世界地圖)를 펴 놓고 희미하게 파랑 볼펜 선으로 끄어 주면서요. 당(唐)나라의 영토가 이란 쪽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데요. 960년 신라말기에 진성여왕 (眞聖女王) 한 명 두고, 아래 신하(臣下)들이 권력패권(權力覇權)에 휘말려 무방비(無防備) 상태에서 당(唐)나라 침략에 의해서요.
권력패권(臣下權力覇權)싸움을 한 신하(臣下)들은 산들로 다 도망쳐 버리고 뜻 있는 극소수 분들께서 중원대륙에서 고군분투유격전(孤軍奮鬪遊擊戰)으로 막 다가 막다가 넓은 대륙은 못 지켜 내고, 한반도이남 (韓半島以南) 아래로 두고 단 일격에 허무하게 넓은 중원유라시아 대륙을 다 빼앗기고 후삼국(後三國)없이 고려(高麗)를 개국(開國) 합니다. 후삼국(後三國)이 없었습니다. 960년에 무방비(無防備) 상태에서 기습공격을 당한 것은 사변전란(事變戰
)이요.

실제 적인 큰 외세 침략의 1번입니다.

  1080년 경 몽골 침략, 이번에는 몽고 징지스칸 애들이 놀려 왔냐~! 저 애들 조말랑 말 타고 여기까지 관광 온 모양이다. 백두산 압록강에 이중삼중 격벽을 성을 쌓아 두어서 한반도 땅에는 발도 못 딛혀 보았습니다. 그 충신들은 칭하여 지기로는 한충 찬화 공신(翰忠 化 功臣)입니다. 이것도 밝혀내야 합니다. 여기에도 참전 했습니다.三十二世 김성우(金成雨)한충 찬화 공신(翰忠 化 功臣)입니다. 힌트 드리지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삼도통제부의 지세포성처럼 2중3중겹치기 식으로 쌓아 두었기에 임진지란(壬辰之) 7년 내란 큰 전쟁 속에서도 지세포성은 함락하지 못 했습니다. 백두산 두만강과 압록강 쪽에 지세포성(知世浦城)처럼 이중삼중 격벽을 쌓아 두어, 몽고군 한반도 발도 못 딛여 보았다고 하데요. 그리고 징지스칸의 진짜 업적은 “몽고와 지금의 중국밖에 통일한 분입니다. 이것 어떻게 알게 되는가 하면요. 중국에서 한국 거제로 일을 일시적으로 하로 “”미쮸 왕”” 아저씨한테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시 가르쳐 드리는 건데요.““미쮸 왕””아저씨는 중국에서 고등학교 선생 하다가 오신 분이며, 또한 1300년 전 통합삼합(統合三韓)에 참전한 당나라 중 무장 군의 후예이기도 했습니다. 미쮸 왕 아저씨의 선조는 十四世 김삼광 (金三光) 이손 당 원좌 무중랑장(伊飡 唐 援左 武中郞將)으로 당 나라 군대를 총 지휘 하에 예속 됩니다.

위에 명암은 2013년 4월에 통합삼한 신라 속국 중국 북경에 갔을 때 몽고 23살 애 한테 몽고 징기스칸 업적을 A4용지에 몽고와 중국 밖에 통일을 못 시켰다고 지도를 그려 주면서, 과거 1300년 전에 김유신 내 선조께서 몽고도 정벌 했다고 가르쳐 주데요. 그 때 나보고 몽고 함께 가자고 비행기표 끊어 준다고 할 때 도무지 말이 통해야 함께 갈 것인데요.  명암속에 애가 저한테 고맙게도 밥 한끼 사 주데요. 그러니까 몽고 징기스칸은 고려시대 때 한반도 침공을 못 했음을 가르쳐 주데요.
그런데 중국여권이랑 몽고여권이랑 전부 다 똑 같데요.


26세(二十六世) 진유(振酉) 내 선조께서는 『광정대부 도첨의중 찬수문전 태학사 판전리사사 세자사(匡靖大夫 都僉議中 賛修文殿太學士 判典理司事 世子帥)』로 왕후계자(王後繼者) 세자(世子)의 스승이었다는 뜻으로 스승 사(師)가 들어갑니다. 40세(四十世) 시추 (是秋) 내 선조께서『판전리사 세자사(判典理司 世子帥)』로왕후계자(王後繼者) 세자(世子)의 스승이었다는 뜻으로 스승 사(師)가 들어갑니다.왕족(王族)이 왕족(王族)의 왕후계자(王後繼者)를 훈계하여 가르친 국가는 고려시대(高麗時代)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세계 기네스북 감입니다. 17세(十七世) 웅원(雄元)이손(伊飡)~ 41세(四十一世)진국(鎭國)삼중대광 례부상서(三重大匡 禮部尙書)까지 25세(二十五世)까지 내 선조께서 외동아들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이것 또한 세계 기네스북 감입니다.

그럼 예들어 거제 일운면 지세포성(知世浦城)을 두고 설명 합니다. 지세포성(知世浦城)은 과거 400년 전 임진지란(壬辰之)최전방이면서도 최대격전지이면서도 7년 동안 함락 당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지세포성(知世浦城)과 같은 성(城)구조가 1080년 경 몽골 침략 때 백두산과 압록강 일대에 만들어졌다고 생각 해 보셔요. 낮은 산을 허물지 않고, 산 능선을 두고 아래로 성벽(城壁) 원둘레를 두고, 성(城) 내부와 성(城) 좌우 측면 외곽에『ㄱ기역』자 90도 수직계단식으로 되어 있어 지세포성(知世浦城)은 난공불락(難攻不落) 일겁니다.



벌목이 되기 전 지세포성(知世浦城)

 소나무가 우거 진 안쪽에 지세포성(知世浦城)이 있습니다. 지형(地形)을 자세히 보십시요. 지금 사진을 보는 곳을 쳐다보면요. 수직계단 밭들입니다. 불규칙적인 수직계단의 밭을 숨을 허덕이면서, 기어 타고 소나무가 우진 지세포성(知世浦城)측면을 뚫어야 됩니다.

▲ 지세포성(知世浦城) 안쪽입니다. 지세포성(知世浦城) 위에서 아래로 쳐다면보면요. 수직계단 90도 짜리 밭이 있을 겁니다. 지세포성(知世浦城)꼭대기까지 점령 할 여고 하면, 자기 키 만한 수 많은 밭들을 기어 타고 올라와야 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지세포성(知世浦城) 위까지 점령 할여고 하면, 자기 키 만한 다양한 수직계단 90도 기어 타고 올라와야 하는 합니다. 지세포성(知世浦城) 위에 까지 올라 타고 오다가 지쳐 버립니다.
지세포성(知世浦城)은 낮은 산기슭에 위로 성돌레로 형성하면서, 아래로 수직계단 밭으로 그 층이 두껍게 만들어져 있는 성입니다. 지세포성(知世浦城)에 제일 꼭대기에 오늘 날 날씨가 선명 할 때 보면요. 47.9Km대마도를 관측 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워낙히 역사를 소설로 잘 꾸며 놔서요. 지세포성(知世浦城)은 사실 임진지란 (壬辰之)전 중에 대마도와 가장 가까운 성(城)입니다. 한반도 근접 거리에 오면 적의 함선들이 동해상으로 빠져나가는가 서해상으로 빠져나가는가 작전에 위치 선점의유리한 고지에 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적은 눈에 거슬리는 지세포성(知世浦城)을 함락 시킬여고 최대한 많은 보내와도 함락 시키지 못했습니다. 지세포 만은 지형이 앞에는 지심도는 섬이 버티고 있고, 밖에서 지세포 만을 생각하면 수로가 ㄴ(니은자)이고, 지세포성 바다가 쪽에는 험난한 갯바위 지형을 갖추고 있어, 난공불락 지대 이었습니다. 이율곡이는 입 만 10병력 양성 주장 펼치다가 실패 했지만요. 신관호 삼도통제사나 친구 중조4세 원(元) 내 선조께서는 통정대부 장예원판결사(通政大夫 掌隸院判決事)로써 지세포성을 건립 했습니다.

지금의 성은필요성이 없지만,수직계단90도 논의 지형의 유리함에 대해서도 많이 설명 해 왔습니다. 이런 수직계단 90도의 논의 높이는 평균 1~1.5mm정도이며, 다른 곳의 수직계단 논의 층수와 높이는 다양합니다. 더욱이나 해안선 쪽에 있는 수직계단 논은, 지 아무리 첨단화 상륙 장비로 상륙작전을 펼친다고 실제적으로 상륙작전이 거의 불가능 합니다. 이유는 수직계단 논에지형의 유리함은 “전차”나 “LVT(수륙양륙차)”의 등판이 불가능 합니다. 상륙병들 쳐 들어와도 수 많은 다양한 수직계단 논을 타고 기어 올라오면 육체적 및 신체적으로 에너지 소모가 많이 됩니다.
측, 숨을 허덕이면서 많고 많은 수직계단 논을 기어 올라타고 와야 됩니다. 작은 우군의 병력으로도 많은 상륙병들을 막아 낼 수 있다는 겁니다. 수직계단 논이 끝이 나는곳이 울창한 소나무 숲지대로 형성 되었기 때문에 매복 및 숨기 좋은 지리 지형의 유리함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이론은 지금까지 나밖에 몰랐지만요. 그 동안 관심 있는 군 관계자들한테 꽤 가르쳐 주었습니다.진실을 알아야 현실이 보입니다. 나는 1999년에 8월 지세포성으로 찾아 온 일본대학교 교수와함께 온 일본대학생10명 한테 지기 싫어서 알려 온 무단 노력한 결과 지세포성의 진짜 성곽과 지세포성 내에 헷갈린 수직계단 밭이 원래 2중3중4중 그 이상의 성을 형성 할 수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보통 인내력 없이 관찰력 없는 사람은 이해 할 수 가 없는 내용입니다. 

지세포성(知世浦城)은 임진지란(壬辰之) 중 최전방 성(城)이고,임진지란(壬辰之) 최대격전지이면서도 난공불락(難攻不落)으로 지세포성(知世浦城)을 지킨 분들은 대 부분이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이 됩니다.성전구공(成戰具功)을 했습니다.


그 동안 가끔 과거 소설 사극 전투사 드라마 진(鎭)을 보니까요. 걍~ 쉽게 적은 병력으로 점령 하겠데요.

1380년경 이성계가 맛이 가서 내란 일어켜 충렬왕 짜리 뺏어면서 충렬왕의 목숨 구하고 고려국사정리 한다는 뜻으로 사국(使國)의 글을 받습니다. “‘호고봉 충렬왕 명공 사국 금 백의(號孤峰 忠烈王 命公 使國 禁 白衣)
”지금 한문에 뒤 바퀴어서 (號孤峰 忠烈王 命公 史國 禁 白衣)이렇게 부르면 무슨 짱 끼워 맞추어 지지요.四十七世 김상주(金相宙)입니다. 나라팔아 먹은 이완용 조카손자 이병도 이 새끼는 역사를 왜곡 시키면서 왕 이름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기가 막혀서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二十三世 김상좌(金商佐) 고려개국 원훈(高麗開國 元勳) ~  四十七世 김상주(金相宙)호고봉 충렬왕 명공 사국 금 백의(號孤峰 忠烈王 命公 使國 禁 白衣)  二十五代까지 고려왕권과 함께 했습니다.  고려 태조(高麗 太祖) ~ 충렬왕(忠烈王)까지 二十五代까지가 고려왕권 입니다.

친일파 매국노 이병도 이 새끼는 나라 역사 왜곡시키면서 역사 나라땅까지 팔아먹어치웠습니다. 한국 밥통들은 나라팔아 먹은 이완용 조카 이병도가 역사를 왜곡 시킨 엉터리 역사를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이병도는 고려왕권 (高麗王權)까지 왜곡 시켰습니다. 고려(高麗)의 마지막 왕 충렬왕(忠烈王) 아래로 없든 왕 이름을 무려 9명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공민왕,우왕,창왕, 공양왕까지 줄기차게 만들어 낸 까닭을 잘 모르겠네요. 이병도 이 새끼 역사 왜곡 시켜 놓고 나니 속이 후련 했겠네요. 

 500年 前 폭군연산군(暴君燕山君)은 폐비윤씨 사건이 아닙니다. 실제로 폭군연산군(暴君燕山君)이 사화(士禍)를 만들어 내는 것은 갑자사화(甲子士禍)입니다. 갑자사화(甲子士禍)는 조선왕조위협(朝鮮王朝威脅) 명문유림집안(名門儒林集眼)들을 대략 방출 시킵니다. 명문유림집안(名門儒林集眼)중에서도 저의 (先祖)께서 서열(序列)랭킹1위에 걸립니다.
폭군연산군(暴君燕山君)이 국사(國使)서들 보존창고를 왈칵 불에 소각시킵니다. 그것도 모자라. 이미 돌아가신 내 선조(先祖)들의 묘 터를다 파헤쳐 집니다.


새로운 中祖一世 우륜(祐 人+崙) 선조(先祖)께 가락국 시조 대왕 휘, 수로왕 원대손 관지(駕洛國 始祖 大王 諱, 首露王 遠代孫 官至)의 뜻 가락국의 시조를 모시되, “빛날 휘(諱)”가 들어가서 가락국(駕洛國)의 대왕(大王)으로 추대 받았습니다.
수로왕(首露王)의 멀 후예라서“멀 원(遠)”이 붙고, 수로왕(首露王)의 대를 잊는다는 뜻에서“이을 대(代)”가 붙고,“손자손(孫)” 장손이란 후예이면서도 “이을 대(代)”를 받고 뜻으로 나라에서 내렸다는 뜻으로 벼슬 "관(官)"붙었고 마지막에“이를 지(至)”자가 붙는 것은 새로운 중조를 모시고 이 나라서 새 출발하란 뜻으로 가 들어갑니다. 해석을 하면 수로왕의 먼 후예이면서도 대를 잊는 손자란 뜻입니다.폭군연산군(暴君燕山君)이 폐비 윤씨 때문에 무슨 사화 걸었다는 절라~ 기절 졸도사 할 일입니다. 실제로 폭군연산군(暴君燕山君) 사화(士禍)를 만들어 내는 것은 조선 왕조 위협 집안 들을 대략 방출 시킵니다. 오~잉 이 집 보니까? 선조대대(先祖代代)로 이것 가리지 않고 대대로 벼슬길에 나오네~!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에서 조선 왕조 위협 집안 서열 랭킹"0"순위에 걸려 들었습니다. 갑자사화(甲子士禍)단 칼에 쫓겨 나면서,갑자사화(甲子士禍)로 거제둔덕(巨濟屯德)으로 쫓겨 내려 오면서 의리 있는 같은 신하(臣下)들 사이에서 가락국왕자(駕洛國王子)로 극친 대우를 받습니다. 폭군 연산군(暴君燕山君)이 맛이 가서 국사서들 보존 창고를 왈칵 불에 소각 시킵니다. 그것도 모자라. 이미 돌아가신 내 선조들의 묘터를 다 파헤쳐 집니다. 가락국 시조 대왕 휘 수로왕 원대손 관지( 駕洛國 始祖 大王 諱 首露王 遠代孫 官至)의 뜻 가락국의 시조를 모시되, 빛날 휘(諱)가 들어가서 가락국의 대왕으로 추대 받았고, 수로왕의멀 후예라서“멀 원(遠)”이 붙고,"이을 대(代)”받고 “손자 손(孫)” 장손이란 뜻이란 뜻으로 나라에서 내렸다는 뜻으로 “벼슬 관(官)”붙었고 마지막에 붙은 “이를 지(至)”이 선조 모시고 새로 시작하란 뜻이 왜 붙는가 하면요. 그래서 새롭게 이 나라 땅에서 새로운 중조인 시조를 모시고 출발 하라는 뜻으로 이를 지(至)가 들어 갑니다.다시 한 번 더 상기 시키는데요.

우리 집안은 파(派)가 붙는 집이 아니고, 수로왕 원대손 관지(首露王 遠代孫 官至) 집입니다. “이를 지(至)”자는 무슨 지도(地圖)를 펼쳤을 때 처음부터 시발점이 “이를 지(至)”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中祖一世 우륜(祐 人+崙) 선조(先祖)를 모시고 이 나라서 새롭게 출발하란 뜻으로 “이를 지(至)”가 들어갑니다.
 

즉,중조 5세(中祖 五世) 희진(希璡)자 호 구수암 명종 임술생 행 어모장군 훈련원 첨정 임진지란 창 의군수장 선무원종1등 공신 녹훈 향 거제군 재 삼충사 배숙부인 진주강씨 간행공신녹권 주인공 만고충신(希璡)字 號 龜睡菴 明宗 壬戌生 行 禦侮將軍 訓練院 僉正 宣祖 壬辰之乱 倡 義軍首將 宣武原從一等功臣 錄勳 亨 巨濟郡 在 三忠祠 配淑 夫人 晋州 姜氏 今刊 功臣錄券 主人公 萬古忠臣) 선조(先祖)께 中祖一世 우륜(祐 人+崙)선조(先祖)모시고, 새롭게 출발하란 뜻으로 “이를 지(至)”가 들어갑니다. 내 집은 파(派) 붙는 집이 아니고,수로왕 원대손(首露王 遠代孫) 집입니다.

제목: 선무원종 1공신 이순신 묘 (宣武原從 一 功臣 李舜臣 墓) 와 내 선조 선무원종1등 공신 김희진 묘(宣武原従一等 功臣訓鍊院 僉正 金希璡 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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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인조이재팬과 공유 할 때 인조이재팬에서한문 임진란(壬辰亂)에서 이 “어지러울(亂)”에서요. 쓰기 쉬운 어지러울“란(乱)”자를 퍼왔습니다.한국 인터넷이나 한글에서는 찾기 어렵데요. 중대장 중초 5세(五世) 희진(希璡)자 호 구수암 명종 임술생 행 어모장군 훈련원 첨정 임진지란 창 의군 수장 선무원종 1등 공신 향 거제군 재 삼충사 배숙부인 진주강씨 간행공신녹권 주인공 만고충신(字 號 龜睡菴 明宗 壬戌生 行 禦侮將軍 訓練院 僉正 宣祖 壬辰之
倡 義軍首將 宣武原從一等 功臣錄勳 亨 巨濟郡 在 三忠祠 配淑 夫人 晋州姜氏 今刊 功臣錄券 主人公 萬古忠臣) 또 주목 할 것은요. 몇 개 찾아냈습니다.
과거 역사 적으로 만고충신(萬古忠臣)이라 큰 뜻을 받은 집은 우리 집 밖에 없을 겁니다. 만고충신(萬古忠臣)이라는 뜻은: “선조대대로 충신”이요. “자손대대로 충신”이라는 뜻입니다. 이 뜻을 받은 집이 저희 집이 유일 합니다.


의형제(義兄弟) 거제의장을 일본에서 이렇게 씁니다. 거제의장(巨済義)··우리 한국에서는 이렇게 쓰고요. 거제의장(巨濟義將) 선무원종1등 공신(宣武原従一等 功臣) 신응수 장군(신応寿 軍), 윤영상 장군 (尹 将軍), 김희진 장군(金希〓 将軍) 萬古忠臣에서 이 万古忠臣으로 표기하데요. 또, 신응수 장군(申應壽 將軍)은 한문을 이렇게 쓰데요. 신응수 장군(申応寿 軍)으로 쓰고요. 윤영상(尹榮祥 將軍)을 윤영상 장군으로(尹祥 将軍)쓰고요. 중초 중대장 5세(五世) 내 영감을 이렇게 바꾸어서 쓰데요. “김희진(金希璡 將軍) 金希〓 軍” 쓰데요. 그리고 의형제(義兄弟) 한문은 일본과 동일합니다. 또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 중국과 일본은 국자를 이렇게 씁니다. 우리 한국에서는요 국자를 이렇게 쓰는데요. 韓國,中國,太國, 일본에서는“韓, 中, 太国”이렇게 한문을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님들,””인조이재팬에서 북한(北韓)을 치면요. 북조선(北朝鮮)이라고 나옵니다. 진실은 과거에 이름 앞에 메울辛 성(姓)이 없었습니다. 원래는“갑申성(姓)”을 쓴 영산신씨가 진짜 집안입니다. 그리고 진짜 대부(大夫)집안들은 각파(各派)로 나뉘어져 있지 않습니다. 해주 최씨가 唐 重將 軍의 후예입니다. 천안,공주,안성쪽에 3집안 밖에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임진왜란(壬辰倭亂)이라고 일컫는데요. 엄연히 같은 국가에 벌어지는 내란입니다. 목선을 만들 여고 하면 수작업에 들어갑니다. 한국 국사에는 정확히 구분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 서문(序文)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바다를 건너오는 배의 숫자는 크고 작은 배가 1만여 척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1 만여척 목선을 만들기 위해서는 능히 100년의 전쟁 준비를 아래 조선(일본)에서 설쳐 지요. 그러니까. 연산군 이후로 선조까지 100년동안 1만여척의 목선 함선을 수작업으로 했습니다. 조선(일본)들이 야~ 우리 대륙 건너가고 싶으니까? 길 좀 비켜 달라. 했든 말이 진짜 입니다. 조선왕조 선조(宣祖) 때 신하 자기들끼리 치고 박고 권력 패권 싸움에 휘말려 , 조선(일본)은 같은 나라인데 설마 하다. 갑작스레 애군 없이 뒤통수 얻어맞은 사건이"임진지란(壬辰之)" 내란(內)큰 폭등 사고 7년 전쟁(戰爭)입니다.
다음 검색에 지란(之亂)이라고 검색 해 보니까 사전에 자중지란 (自中之亂)이라고 국어 사전에 나오데요. "임진지란(壬辰之)" 7년 내전(內戰)기간 동안 바다를 건너오는 적의 함선 숫자는 크고 작은 배가 1만여척이 왔다고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에 기록이 되어 있데요. 7년동안 쉴틈없이 쳐들어 왔습니다. 정유재란은 나라 팔아 먹은 이완용 조카 이병도가 엉터리로 만들어 낸 사건입니다.
자중지란 (自中之亂)의 뜻은 『같은 편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또 통합삼한 신라 속국 중국는 안사지란(安史之乱)이라고 나오던데요. 뜻은 『안사의 난』이라 나오데요.  


그리고 “자중지란 (自中之乱)”.“임진지란(壬辰之乱
)같은 뜻입니다.

“자중지란 (自中之乱)”과 “임진지란(壬辰之)”의 뜻은?
같은 편끼리 하는 싸움.
또, 이전에 네이버에서 함께 운영한 인조이재팬에서 한글로 임진왜란을 쳐 놓고 번역을 누르니까?


한국 사람들은 58년 전 6.25사변(事變)을 6.25전쟁(戰爭)이라고 비극을 날조 시키고 있지요.“임진지란(壬辰之)”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의 1等~3等 功臣 이름을 기록하면서 "원종도감" 설치하여 후세에 알리라고 하든 데요. 진짜 저의 옛 先祖들께서는 代를 이을 듯,말 듯 하면서 대부분이 외동입니다. 저의 주변에는 가까운 친척이 없습니다.내 집에 영감(선조)은 선무원종1등공신 훈련원 첨정 김희진 창 의군수장 녹훈 (宣武原從1等功臣 訓鍊院 僉正 金希璡 倡 義軍首將 錄勳.)이며, 일명 三壯士(삼장사[신응수,윤영상,김희진])이라고도 부르며,또는 삼문장(三門將)입니다. 거제 지세포성은 『임진지란(壬辰之乱)』이 터졌을 때,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님께서 계셨든 삼도통제부(三道統制府)입니다.


진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에서 맛이간 폭군연산군(暴君燕山君)앞에 있는 치욕 없는 치욕 서러움을 받고도 쫓겨나서도 이 나라의 백성들을 위해 밑에 자식을 충절을 시켰습니다. 거제 지세포성에서 밑에 아들二世 완(完)훈련원 주부(訓鍊院 主簿)란 벼슬에 군사를 훈련시키고 또, 밑에 손자는 三世 인조(仁祚) 훈련원 판관(訓鍊院 判官)란 벼슬에 군사를 완전히 정신 무장시키고, 증손자는 四世 원(元) 통정대부장예원판결사(通政大夫掌隸院判決事)에서 각종 병기 장병 정신 상태 최종 점검, 조선(일본)에 가서 같은 나라의 전쟁을 억제 해 볼 여고 겁나게 나발 불고 다니다가 희생, 오세증손자 선무원종1등공신 훈련원 첨정 김희진 의군수장(宣武原從 一等功臣 訓鍊院 僉正 金希璡 義軍首將)입니다. 1592(선조25년) 4월 16일 지세포성에서 삼도통제사 신관호 장군(三道統制使 申觀浩 將軍)님과 三壯士(신응수,윤영상,金希璡) 4 명의 장군이 대마도를 쳐다 보니까? 삼도통제사 신관호 장군(三道統制使 申觀浩 將軍)님 왈, 드디어 "임진지란(壬辰之乱)...



단 번에 갑작스레 수백척의 함선들이 거제 지세포성(知世浦城)으로 모여 든은 것이 미심적 임진란 첫 승리지는 지세포진성(知世浦鎭城)입니다. 지세포진성(知世浦鎭城)은  임진지란(壬辰之乱)  중 승승장구(乘勝長驅)한 성(城) 입니다. 지세포진성(知世浦鎭城)은 과거 임진지란(壬辰之乱) 중 최전방 성(城)으로 난공불락 (難攻不落) 성(城)입니다.

저희 집에서 사라져 사본으로 돌아 온 삼장사 실기 읽어 보니까요.  지세포성에서 해와 날이 가는 줄도 모르고, 혈전을 벌여 다고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신관호 삼도 통제사가 전사를 하고, 신응수(申應壽), 윤영상(尹榮祥), 김희진(金希璡)의 삼장사(三壯士) 의형제를 맺게 해 주신 분이 신관호 장군입니다.  신응수(申應壽), 윤영상(尹榮祥), 김희진(金希璡)의 삼장사(三壯士)는 생즉동심(生則同心), 사즉일일(死則一日)이라고요~ 뜻은 『살아서 한 마음이요~ 죽음에 한 날이다』~ 라는 큰 뜻입으로 맺어 진 의형제들입니다.


한산도,착량,노량해전, 이렇게 3개 해전 내 영감(선조) 김희진 의군수장(金希璡 義軍首將)께서 軍事兵法을 삼도통제사 이순신 장군(三道統制使 李舜臣 將軍) 앞에서 구사 한 것도 알고 있습니다. 선조(宣祖) 25年(1592) 임진지란(壬辰之乱)때 거제의장(巨濟義將) 신응수(申應壽), 윤영상(尹榮祥), 김희진(金希璡)의 삼장사(三壯士)가 하청(河淸) 장터에서 분탕질하던 왜군을 밤중에 습격하여 섬멸하였느니 이를 설욕전이라 전하며 이 큰 고개를 덕치(德峙)라고 전하며.신응수,윤영상,김희진 세분은 의형제이면도 선무원종공신녹권내에 선무원종1등 공신으로 되어 있습니다. 거제 옥포대첩 기념비에 가면 거제 출신 선무원종공신 21명 위패 이름이 새겨 져 있습니다. 거제의장(巨濟義將) 신응수(應壽), 윤영상(尹榮祥), 김희진(金希璡)의 삼장사(三壯士)  새겨 져 있습니다. 거제 엉터리 향토 사학자 제익근이라는 놈은 임진란 발발하자 마자 거제 유림 고현성으로 집결 시켰다고 하는데, 거제시청 주변에 있는 고현성은 소설성입니다. 거제시청 주변에 성이라는 없었습니다. 거제시청 문화제에서 있는 놈들 제익근한테 돈 엄청 많이 주었답니다. 그런 제익근은 엉터리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엉터리 역사 집필을 했어, 따로 삥쳐 먹었습니다.


아래는 진단학회 명단들입니다. 진단학회는 친일파들입니다. 지금은 애국자가 되어 호의호식 하면서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완용이는 나라 팔아 먹고, 이완용 조카손자 이병도는 이 나라 역사 왜곡시키면서 역사땅까지 팔아 먹었습니다.
다시 상기 시키는데요. 김유신 내 선조의 업적은 삼국통일 아님, 통합삼한 임, 아시아 전체가 통합삼한 신라 땅이었습니다. 960년 정신 못 차리다가 다 빼앗겼습니다. 후삼국이 없었습니다.  통일 한 번 밖에 없었습니다. 김유신 내 선조께서는 친일파 역사학자 이병도에 의해 누명이 쓴 상태입니다. 이 나라 역사 왜곡 시키면서 식민사관을 계승한 이병도의 뻔뻔한 모습입니다. 친일파 진단학회 놈들은 다들 독립유공자가 되어 이 나라 썩어빠진 국가보훈처에서 3대까지 보상을 받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외세 침략 1000번 일수록 정신을 번쩍 들어야 하는데, 갈수록 국가 혼란 싸움은 치열한 공방전이고, 소설 드라마 태조왕건2탄3탄 폭소탄 국가 내분 싸움하는 것 같네요. 나라팔아 먹은 이완용 조카 손자 벤치에 앉자서 역사 소설 읽고 누룽지 먹은 이병도(李丙燾) 본문호 두계(斗溪). 서울 출생. 대한민국학술원 원로회원이었습니다. 1919년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1933년 불교전문학교 강사가 되고 1934년 진단학회(震檀學會) 이사장에 취임하였습니다. 1941년부터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출강하였고 1945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1954년 학술원 종신회원에 선임되고 서울대학 대학원장에 취임하였다. 1960년 문교부장관에 등용되고 같은 해 학술원 회장에 선임되었다.1962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1965년 동구학원(東丘學園) 이사장, 1966년 성균관대학교 교수 겸 대동문화연구원장에 취임하였으며 1969년 국토통일원 고문에 추대되었습니다. 1976년 동도학원(東都學院) 이사장에 선임되었고 1980년 국정자문위원(國政諮問委員)에 위촉되었습니다.

나라팔아먹은 이완용 조카손자  매국노 친일파 이병도는 그 동안 문화훈장 대한민국장, 학술원 공로상, 서울특별시 문화상, 5·16민족상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저서에 《한국사대관》 《한국사(고대편)》 《한국사(중세편)》 《고려시대 연구》 《국사와 지도이념》 등이 있습니다.  이병도(李丙燾) 밥통이 이 나라의 역사를 앞전 뒤전 양편 파편식으로 국사를 날조를 시켰습니다. 1985년에 멋 모르고 "국사광복의 횃불"이란 책을 펴 놓고 덤벼들었다가. 이병도의 권력이 일개 서울대학교 총장인데, 자기 친구들이 검찰총창 부터 검찰 수뇌부를 이용해서 몽땅 다 잡아 넣는 다니까? "국사광복의 횃불"에 참가한 사람들이 겁먹고 국회의원이고 나발이고 몽땅 숨었습니다. 이병도는 6.25사변 때 피난민 양아치 일 뿐 입니다. 또,일정시절에 진단학회 라는 단체가 있는데요.독립군 단체들이 아니고,친일파들입니다.진단학회 발기인은 고유섭(高裕燮), 김두헌(金斗憲), 김상기(金庠基), 김윤경(金允經), 김태준(金台俊), 김효정(金孝井), 이병기(李秉岐), 이병도(李丙燾), 이상백(李相伯), 이선근(李瑄根), 이윤재(李允宰), 이은상(李殷相), 이재욱(李在郁), 이희승(李熙昇), 문일평(文一平), 박문규(朴文圭), 백낙준(白樂濬), 손진태(孫晋泰), 송석하(宋錫夏), 신석호(申奭鎬), 우호익(禹浩翊), 조윤제(趙潤濟), 최현배(崔鉉培), 홍순혁(洪淳赫) 등이며, 초대위원은 위의 발기인 중에서 김태준, 이병도, 이윤재, 이희승, 손진태, 조윤제 등이 선출되었다고 인터넷에서 뽑아 냈는데요..이병도는 서울대학교 총장을 역임 했습니다. 진단학회가 수축이 되어 우리나라의 역사인 1300 년 전 넓은 중원유라시아 대륙 및 북극시베리아 영토까지 통합삼한게 신라 였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열등감의 역사 소설을 만들어 냈습니다.



친일파 역사학자 이병도 역사학이《국사와 지도이념》이라면, 나 역시도 국사와 지도이념입니다.

삼국유사는 일본서 이미대로 만들어 져 가지고 온 역사 소설 책입니다.  국가보훈처는 친일파 진단학회를 독립유공자로 만들어주고, 3대까지 호의호식(好衣好食) 보상을 시켜주고 있는 곳이랍니다. 

1999년10월 경에 충남 서산에서 최치원 후예분을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 이 나라 역사를 알게 된 주 원인입니다. 그 분의 집에는 아직까지 역사서들이 건제하다고 하면서, 한문 철자법도 모르는 일자무식한 저한테 선무원종공신녹권 내에 있는 선무원종 일등공신 훈련원 첨정 김희진 내 선조의 세계도를 보면서 일일이 다 설명 해 주데요. 첫 마디가 김유신 내 선조 밑에 친 동생이 없는 것이 진짜 이 나라 역사라고 하면서 광개토는 만주 요동었지만 김유신 내 선조는 그 이상 더 이상 어마어마한 영토 확장으로 통일을 시켰다고 하면서 후삼국이 없다고 하면서 ... 다 설명 해 주데요. 최치원 직계 후예분 끝 저보고 좋은 선조분들 모시고 계시네요~라고 해 주데요.  선무원종공신녹권 내에 있는 선무원종 일등공신 훈련원 첨정 김희진 내 선조의 세계도가 진짜 역사 라고 하데요,

2000년 울산 현다이중공업 헷치카바 철의장 공장에서 딱 한 사람한테 물어 보니까요, 박영택이란 형이 이런 말을 해 주데요.
김유신 장군이 통일한 것이 진짜 통일이고, 그 통일한 영토 범위가 어마어마 하다고 하면서 하면서, 그 형 말로는 신라말기에 백성들이 게을러 빠져 못 먹고 못 살아서 나라땅 팔아 먹어 치웠다고 하면서, 후삼국이 없었다고 말을 하면서 통일은 단 한 번 밖에 없었다고 하면서, 소설 사극 태조 왕건  아예 안 쳐다 본다고 하데요. 김유신 내 선조께서 통일한 땅 빼앗기지 않고 오늘 날 현재까지 잘 지켜 내고 왔더라면 아마 지금 쯤 이 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강대국이 되어 있을 지 모른다고 하데요.그 형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 오는 말이라고 하면서 가르쳐 주데요. 그 형은 나보고 왜곡 된 역사 때문에 이 나라 망하는 지름길로 걷고 있다고 하데요.

2000년 나라팔아 먹은 이완용의 조카손자 이병도 이 놈을 알게 된 것은 선무원종공신녹권 사본을 만든 쌍놈 사기꾼 김범수 놈한테서 국사광복의 횃불이란 책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5년 국사광복의 횃불이란 책을 펼쳐 놓고 덤벼 든 것이 김유신 내 선조의 통일 범위 놓고, 역사 왜곡 시킨 나라 팔아 먹은 이완용 조카손자 이병도 상대로 싸우다가 이병도 일개 권력이 서울대학교총장이었는데, 이 나라 떡검 검찰 놈들 친일파 매국노 앞잽이 인가 몰라도 이병도가 떡검 떡찰 수뇌부 권력을 이용하여, 모두 잡아 조진다고 하니까 숨어 들어 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산에 동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김태희란 쌍놈 백정 교수는 김유신 내 선조 업적 중국서 이야기 듣고 온 것인가 몰라도, 나보고 김유신 장군 실기 사 가라고 하면서, 만주,요동벌 정벌 통일 했다고 하면서, 내가 김유신 내 선조 밑에 동생이 있었냐고 물어 보니까요. 좆같은 소리를 하데요. 동생이 있었다고 하면서 고액으로 김유신 장군 실기 사 가라고 하데요.
 
2001년 6~7월 사이에 거제에서 중국 미쮸왕아저씨께 꼬치꼬치 역사를 깨 물어 본게 다 맞았습니다. 미쮸왕 아저씨와는 한달 동안 함께 한 방에서 잠을 자면서 역사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중국 삼국지도 소설입니다. 미쮸왕아저씨께서 유비,관우,장비는 알아도 제갈공은 모른다고 하데요.  
그럼 한쿡에 제갈성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가 제갈공의 후예라고 하는데요. 이게 어찌 된 영문입니까요~

외세 침략은 실제로 단 1번 밖에 없습니다.960년에 당나라 침략이 한번입니다. 지금부터 1100년 당나라의 위치는 현재 이란 입니다.


기겁 조라 안 믿기 지면 말고요.^^^


 ※ 조선 왕 계보 입니다.

1대 태조(太祖)  , 2대 정종(定宗) , 3대 태종(太宗), 4대 세종(世宗), 5대 문종(文宗), 6대 단종(短宗),, 7대 세조(世祖) , 8대 예종(睿宗), 9대 성종(成宗) , 10대 연산군(燕山君), 11대 중종(中宗) , 12대 인종(仁宗) ,13대 명종(明宗) , 14대 선조(宣祖) 15대 광해군(光海君) , 16대 인조(仁祖) , 17대 효종(孝宗) ,18대 현종(顯宗) , 19대 숙종(肅宗) , 20대 경종(景宗)  ,21대 영조(英祖)  , 22대 정조(正祖) , 23대 순조(純祖) , 24대 헌종(憲宗) , 25대 철종(哲宗)  , 26대 고종(高宗)  , 27대 순종(純宗)


이것은 2000년 충남 서산에서 예비군훈련을 받으면서, 예비군중대장한테 이야기 들은 내용입니다.

아무조록 알두면 좋을 겁니다.

태조 , 세조 , 선조, 인조, 영조, 정조, 순조 끝자가 조(祖)자로 끝이나는 임금은 나라에 난리가 있었다는 것이라고 하데요.

연산군, 광해군 끝자가 군(君)자로 끝이나는 임금은 폭군 임금이라고 설명 해 주데요, 

정종, 태종, 세종,문종 , 단종, 예종 ,성종 , 중종, 인종 기타 등등 끝자가 종(宗)자로 끝이나는 임금은 정치를 잘한 임금한테 붙인다고 하데요.


시조 수로왕 70세요. 수로왕 원대손 관지 중조 1세(始祖 首露王 七十世요.首露王 遠代孫 官至 中祖一世)부터는 十二世 김석견 경상도 의병장군 통정대부(金石堅 慶尙道 義兵將軍 通政大夫)로 지냈으면 현대 전쟁에서도 써먹을 수 있도록 남겨 놓은 군사병법서(軍事兵法書)의 이름은 "용사사적"입니다. 6.25 사변(事變)때 저희 집에 피난민이 도적질 해 갔지요. 그 군사병법서(軍事兵法書)는 “용사사적”입니다. “용사사적”은 이해하기 힘든 책입니다. 피난민 양아치 놈들이 책을 들고 나가서 이해 못하는 軍事兵法書입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 및 육군 본부 적극 협조 해 준다면,十二世 김석견 경상도 의병장군 통정대부(慶尙道 義兵將軍 通政大夫)로 지낸 내 선조(先祖)께서 기록한 유일한 군사병법서(軍事兵法書)인 "용사사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1894∼1895년 사이에 청,일 전쟁이네요. 청나라와 일본이 서로 치열하게 싸움을 붙여 놓고 지칠 만 큼 지친 두 나라 단 일격에 쫓아내었습니다.
일정시절에 저의 증조부께서는 동해 쪽에서 이 나라의 사람을 위해 싸우다가 돌아가신 걸로 압니다. 1930 년(소화5년)3월1일에 일찍 돌아 가셨습니다. 한참 일정시절이라 일본 경찰들이 너희 영감들 어디 가서 죽어서 물어보면“現북한”청진에 가서 콜레라로 죽었습니다. 이 말이 내 집을 살렸습니다. 너 것 증조부 말도 마라. 나라 지킨다고 집에도 얼쩡거리지 않았다고 하데요.


맨앞 좌측에 자리에 앉은 분이 내 친 고증조부 김영근, 우측에 앉은 분이 내 친 증조부 김홍이, 뒤편에 서서 함께 찍은 분은 맨 좌측에서 부터 막내 셋째 막내 증조부, 둘째 증조부 김홍식 나머지 분들은 잘 모르겠네요. 

 
집에 못 들어와서 이 나라 썩은 인간들 지켜 줄 여고 하다가 돌아가셨지요. 즉, 원조 독립운동가입니다. 성격 이야기 들으니까요 한 마리의 선한 학이라고 하데요. 사진은 조(한), 일 합병되기 전 고증조부와 내 증조부께서 침통한 표정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 제일 좌측에 서 있는 분이 오늘날 집을 굳건히 지켜 주신 내 막내 증조부 입니다. 57년 전 6.25사변 때에 의로운 전사를 하신 고아 된 내 조부를 거두어 주신 분이 내 막내 증조부 입니다. 6.25사변 때 육군 위생 중사 뛴 내 큰 조부를 거두어 키워 주신 분이 막내 증조부 입니다.

내 막내 증조부께서 자식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럼 자리 서열 착석 서열로 본다면 앞자리에 앉은 분이 고증조부입니다. 옆에 앉은 분이 내 증조부 입니다. 좌측 뒤에 서 있는 분이 내 막내 증조부이고, 옆에 있는 분이 중간 내 증조부이고, 키가 큰 세분과 키가 작은 한분은 과거 내 선조의 부하 무 장군(武 將軍) 후예 인 것 같습니다. 사진을 볼 때면 나도 무서운 분들입니다.

이것은 믿거나 말거나하는 내용입니다.
1996년 6월 경에 충북 음성꽃동네 자원봉사하로 버스로 가고 있는데, 라디오 방송으로 남쪽섬에 2형제가 일정시절 36년 시작이다고 외치면서 동해쪽에서 스쳐 가면 말한 네손자를 찾아서 그 네손자한테 이 나라를 맡겨야 된다고 하데요. 그말을 듣는 순간에 집에 있든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 서문 내용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 서문 중간 부분에는 『임란 이후 삼백년 후에 다시 왜적이 침입하여 삼십육년간 치욕을 당하였으니 왜놈들의 흉계는 속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잊지말고 조심하여 힘을 기울려야 할 것이다.』 그 방송을 듣고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 서문은 국가 앞날을 예언한 예언서였습니다. 그때서야 아하 우리 증조부, 작은증조부 사진속에 있는 분들이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 사진속에 있는 분들은 대 부분 만주벌판에서 일본군 상대로 독립운동을 한 분들입니다.

※위에 사진은 200년 정도 된 겁니다. 당시에 사진 찍는 집이라면 웬만해서 엄두도 못 낼 때 이라고 하데요.

1950년 6.25사변에 참전 하신 내 친조부와 내 조모 함께 마지막으로 함께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입니다. 일본군으로 착각하면 계산 큰 착오입니다.
내 조부 군복과 비교 하시라는 뜻으로 세계 제2차대전 당시에 일본장교군복 사진을 올립니다. 위에 저희 조부와 일본군 옷깃이 많이다를 겁니다. 아래 바지도 다를 겁니다.
▲유엔 연합 마크 입니다. 비교 해 보시란 뜻으로 올립니다.
1950년도에 찍은 사진이라 모자 한 가운데 정확하고 희미한 사진을 복원 못 지키겠다고 하데요. 잘 보세요. 비록 사진이 선명하지 않고 흐리지만요. 자세히 보면요. 한국군 마크는 아닙니다.
UN 마크입니다. 즉, 아는 분께서 UN연합군 사진이라고 하데요. 일본군 모자 가운데 별 모양 있습니다. 일본 대마도서 군사훈련 2주 받고, 인천상륙작전에 뛰어든 내 조부라고 하데요. 내 친 조부 제 5연대 소속 군번 알파벳 영어 첫 (오)o215022 혈액형 O형 이라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역시, 목 옷깃에 계급장을 스캐너 한 것입니다. 기술의 한계점에 노출 되어 정확한 계급은 지금 식별이 불가능 합니다. 일반 사병 병사 계급이라면 팔 쪽 아니면, 가슴에 계급이 있어야 되는데요. 요즘 사진 복원 기술로 복원이 가능합니다. 군복으로 보아 이병, 일병 계급이 결코 아닙니다. 옷깃에 계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UN연합군 간부(장교) 입니다. 군복 상의 왼쪽 주머니에는 볼펜 한개가 끼워 져 있고, 왼쪽 손목에는 시계를 하나 착용 있습니다. 조부께서는 6.25사변에 참전해서 보급품으로 지급 받은 것으로 추측 됩니다.

 조부(祖父) 왼손에 시계가 있는 것으로 보아 6.25 사변 때도 우리 집은 잘 사는 부유층에 속 했습니다. 선조대대로 이 나라를 지켜 오다가마지막 6.25사변 때 살아 돌아오지 못 해서 좀 삐걱거리지만요. 400년 전 임진지란(壬辰之)때 선무원종1등공신 훈련원 첨정 김희진 창 의군수장 (宣武原從1等功臣 訓鍊院 僉正 金希璡 倡 義軍首將)이신 내 선조께서 이순신 장군(李舜臣 將軍) 작전 참모였다고 하데요. 그 동안 내 조부(祖父)나 내 친 선조(先祖)분들께서는 인간말종쓰레기들을 지켜 왔습니다.

조부 군번 앞에 영어로 (오이일오공둘둘)o215022, 소속: 제5연대(UN연합군 소속), 토벌대 (討伐隊), 혈액형: O형

나는 이 나라를 버리고,일본 자위대(日本 自衛隊)로 가서 상륙자위대(上陸自衛隊) 창설 주역이 되는 겁니다.
현재 일본은 육상자위대(陸上自衛隊),해상자위대(海上自衛隊),항공자위대(航空自衛隊)는 있어도 상륙자위대(上陸自衛隊)는 없습니다.나는 당신들 선무원종공신 후예(宣武原從功臣 後裔)
들과 일본으로 건너가서 상륙자위대(上陸自衛隊) 창설 주역이되는 겁니다.내가 일본자위대에 못 갈 바엔, 북한으로 망명하는 게 훨씬 괜찮을 것 같아 선택을 할 겁니다. 내 선조들처럼 유명 해 져서 적화통일 후에 역사에 기리기리 남고 싶은 야망이 있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선택합니다. 여러분들 내가 북한으로 망명해서 남침을 하더라도 이해 해 주세요.

제 꿈이 제2의 통합삼한을 이룩하는 겁니다.역사에서 친일파 매국노 나라팔아 먹은 이완용의 조카손자 이병도에 의해 누명을 쓴 김유신 내 선조의 누명을 벗겨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저희 친 할아버지 존명(尊名)은 한국 이름으로 김성종이고 별명 “안이” 이라고 부르데요. 6.25 사변이 터졌을 때는 군인이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국가에서 녹(월급)을 전혀 받지 아니한 분이었습니다. 국가에서 녹(월급)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 사변(事變)에서 위해 지킨 것은 엄연히 의군(義軍)에 포함이 되어야 합니다.


저의 할아버지께서는 지세포란 마을에서 혼자서 같은 동네 여럿 분들을 한곳에 불러 모아 앉혀 놓고 손수건으로 희극(연극)을 하면서 웃겨다가, 울렸다가 했다고 하데요. 그때마다 동네 분들은 손수건도 준비하고 배꼽 잡게 웃겨다가 울었다가 했다고 하더군요.동네 분들이 그러던데요. 너희 할아버지 살아 6.25사변(事變)에서 전사 하지 않고 살아 오셨더라면, 너희 집 끄덕 없는 집이라고 말들을 해 주데요. 내 친 조부 엄청 똑똑한 분이었다고 동네분들이나 주변에서 살은 분들이 말을 해 주데요. 조부께서는 리드십이 대단한 분이었다고 말씀을 해 주데요.

아버지께 내가 어릴 때 항상 말씀 해 주데요. 아버지 4살에 고모 2살 울면서 조부의 뒤를 쫓아가니까? 조부께서 전장터 싸움터로 나간다는 말은 안하고 출병(出兵)전에 나서기 전에, 맛 좋은 과자랑 좋은 옷 많이 사 가지고 온다고 해 놓고, 군용 트럭 타고 가는 조부의 모습은 눈물조차도 없었다고 하데요.(오리지널 원조 애국애족 만고충신(萬古忠臣) 뒤에는 한 많은 사연이 있습니다.) 즉, 잡혀 나간 것이 아니고 나라가 위태롭고 정의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알아서 나가서 싸웠습니다. 내가 알아 본 결과 저의 조부께서는 전쟁에서 전사한 위치까지 틀리게 쓰고 있더군요. 또, 묘 터 까지 없애 버렸습니다.

저의 조부께서 6.25 사변(事變) 당시에 날라 오는 포탄을 맞아 몸이 없어져 유골 시신을 못 찾아 다면 이해를 합니다. 저의 할머니 살아생전에 동네 분들과 술을 마시기 전에 저에게 조부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던 군요.


1950년 6.25 사변(事變) 중에 부산 제 3 야전 병원에서 전사 통보를 받고, 할머니께서 부산 야전 병원으로 찾아서 가서 조부께서 돌아 가시 전 까지 사연을 듣고 온 그대로 나에게 말씀 해 주데요. 조부께서 부산 야전 병원에서 전사 하시고, 야전 병원으로 막내 증조부와 할머니께서 찾아가니까? 주변에 함께 입원 해 있든 동료 부상자 들이 막내 증조부와 할머니와 내 가족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는 하군요.“ 왜 이제 찾아 왔냐고 하면서 살 다가 살다가 생전에 그런 사람 처음 보았다고 하면서, 그렇게 치열한 전투(戰鬪)속에서도 그렇게 지독하게 싸우는 사람 처음 봤고, 북진하다가 한 쪽 다리 허벅지 관통 총상 중상을 입고, 부산 야전 병원으로 후송되어  와서도 살기 위해 욕심을 내었더라면 살 수 있다고 하데요. 그런데 조부께서는 야전 병원에서 나오는 구호물자(치료제)와 먹을 것을 주변에 더 많이 아픈 부상자들을 돌봐 주시다가 결국은 부산 제 3 야전 병원에 전사 하셨다고 할머니께서 말씀 해 주시고 울어 버리데요.”  그런데 가족들은 막내 증조부, 조모 조부을 찾다가 부산 제 3야전병원에 군의관이라는 작자가 다 괜찮아져 또 싸우로 전장터로 나갔다고 허풍을 쳤다고 했습니다. 한달 후에 전사했다고 통보가 집으로 왔습니다. 부산 제 3 야전병원으로 가서 조부 시신은 못찾고, 국뻥부 유해 발굴단에서 지금 성의 없는 유해발굴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부께서 전사한 날은 1951년 1월7일입니다. 

동부보훈지청에서도 지금 와서는 강원도 오대산 지구에서 싸우다가 전사 했다고 이미 대로 작성이 되어 있음을 확인 했습니다.
거제 일운면 면사무소 가족증명서에도 똑 왜곡 된 강원도 오대산 지구에서 전사를 했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왜곡 된 겁니다. 서울 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 감찰실에서는 내 친 조부 전사하신 곳이 강원도 원주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조부께서는 강원도 오대산 간 적도 없었고, 더욱이나 강원도 원주에 간 적도 없습니다. 조부께서는 UN연합군이라서 인천상륙작전에 참여 했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분명히 할머니께서 부산 야전 병원에 전사 하셨다고 주변에 많은 부상자들한테서 듣고 온 이야기를 말씀 해 주셨는데요. 이제 와서 이 나라 국방부 졸개들이 강원도 오대산에서 전사 했다는 더니, 말도 안 되는 글로 얼렁뚱땅 넘어 갈 여고 하는 한심한 국가에서 지켜 준다는 게 말이 될 뜻 법입니다.

할머니 살아생전에 조부의 묘 터 찾아내라고 이 나라 정부에 그렇게 애원을 해도 씨알도 안 먹혀 습니다. 아버지께서도 내 집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6.25 전몰 유공자 자녀들 모임에 나가 청와대, 국방부 앞에서 찾아가서 아버지 묘 터 찾아내라고, 애원의 목소리로 궐기를 해도 이 사회의 언론에서 조차도 보도 되지 않는 나라 사람들입니다. 결국 내가 노력한 결과 2003년 6월 24일에 충남 대전국립현충원에 싸워 다라는 명분만 찾는 위패 식에 참가하는 형식에 그쳐 습니다.대전 현충원에 위패 봉안 유족 대표로는 내 이름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의 없는 남조선 대전현충원 위패에는 한국군 일병으로 강등 되어 있습니다.

입만 야무지게 50년 동안 국가유공자 닉네임만 따라 붙었지,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 했습니다.

이제 내가 알기로는 저의 조부께서는 전쟁에 나아가 UN 연합군으로 편입 되어 일본 대마도 쪽에서 군사 훈련을 받고, 인천 상륙 작전을 위해 일본 대마도 쪽에서 대기한 것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인천 상륙 작전을 펼치기 위해 일본 대마도 해상으로 빠져 나가면서, 한국 사람들 중에서 차출 시켜 UN 연합군으로 뽑아서 일본 대마도에서 군사 훈련 받은 병력들을 싫고, 곧장 인천 쪽으로 항해 했는 것으로 압니다. 6.25 사변 당시에는 한국군들 중에는 해,공군과 해병대가 없었다는 명실상부하게 밝혀 주세요. 6.25 사변(事變) 터지기 전에 유일한 군은 육군 밖에 없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6.25사변 역사도 왜곡 된 겁니다. 진짜로 알고 늙은이가 나에게 다 가르쳐 주든데요. 6.25사변 때도 극소수의 분들이 이 나라를 지킨 명예를 6.25사변 때 도망 친 가스통 할배들을 만들어 내어 자칭 6.25참전용자 애국지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어디기는 어딥니까. 남조선 육방부와 국가보훈처 입니다. 
  
1948년 2월에 해방경비단에서 군을 창설 목적으로 해방경비단에서 육군을 먼저 창설을 하면서, 나중에 해군과 공군 창설하기 위해서 육군 내에 해군과 공군 각 감실을 만들었습니다. 육군 내에 해군과 공군 각 감실에서 근무한 사람들 다들 육군 군번이 주었습니다. 1948년 9월에 육방부(국방부)가 남한 한국에 뒤늦게 생겼습니다.
그러니까요. 6.25사변 발발하기전에 남한에는 얼마되지 않는 극소수의 육군들 만 있어을 뿐 입니다. 무기 무장은 별 볼 일 없었습니다. M-1소총 아님, 기관총 몇 정과 무인반동포 정도가 고작이 남한 한국군의 무장 정도라고 하데요.
6.25사변 기간 동안 해군과 공군과 해병대가 없었다고 가르쳐 주데요. 지금 6.25사변사는 소설 입니다. 6.25사변 기간 동안 해군과 공군과 해병대가 없었습니다. 해군과 공군과 해병대는 6.25사변 끝이 나고 뒤늦게 창설이 되는 겁니다. 6.25사변 때 소설 군대가 해군과 공군과 해병대입니다.

내가 6.25 이전의 당시 한국의 산업을 보아도, 군방위산업체들이 제대로 형성 못 되어 있는 줄 압니다. 즉, 함정을 만들 수 있는 조선소가 없다는 것이고, 항공기를 제작 할 수 있는 공장이 없어는 것으로 압니다. 6.25 사변이 끝나고 미국 태평양 건너가기 힘든, 함정들을 한국에 이양시켜 주면서, 그 후에 해군이라는 군과 공군 및 해병대가 창설 되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 나라 사람들의 허풍이 얼마나 심한지 알게 되어 습니다. 한 마디로 전장터에서 나가 이 나라를 지켜 본 일도 없는 사람들이 전장터에서 마치 나라를 위해 싸웠다는 허풍만 늘어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럼 6.25 사변(事變)
터지기 전에 인구가 남한(한국)만 약 2 천만 명 정도 되었습니다..

6.25 사변(事變)주한미군 인터넷 사이트에는 50만명 총 참전 병력을 기록하고 있데요. 그런데 닭 머리 개한민국 육방부에는 70만 명 한국 병력이 싸웠다고 주장하데요.

(실제로 6.25사변(事變) 때 50만의 병력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내가 추측 컨 데 약30만명 정도가 전쟁에 참전 했습니다.) 또, 내 조부만 6.25 사변(事變)에 참여 했든 것이 아니고, 큰 조부는 육군 정규 위생 중사로 3년 동안 싸우고도 군 생활을 좀 더 하시가, 전역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 큰 조부 발취인 업적을 찾을 려고 뛰어 다녀 보았습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내 큰 조부를 모른다고 합니다. 국방부 마찬가지이고, 육군 본부도 마찬가지이고 알만한 곳을 다 뛰어 다녀 보았지만 모른다고 합니다. 어~ 그 사람 모른다고 하면 됩니까? 내 큰 조부께는 6.25사변 3년 동안, 전장터에서 나 뒹굴고 했든 분인데요. 모른다고 가당치도 않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거제 소동 동성APT에서 아버지와 6.25 유자녀 모임회라고 자주 찾아오다가 내 집의 숨은 정체를 말하니까? 오지도 않데요? 절~라 가짜 6.25 전쟁 참전 용사 유자녀가 다시는 집 대문에도 얼쩡거리지 않데요.
일본(駕洛國,임나가라)으로 가면 6.25 사변(事變) 때, 인천상륙작전을 누가 계략 했는가. 진실이 밝혀지지요. 한국 밥통들은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했다고 우기는데요. 실제로는 한국사람 중에서 UN 연합군으로 편입되어, 일본 대마도에서쪽에서 군사훈련(軍事訓鍊) 받는 사람 중에서 맥아더 사령부에 건의해서 인천상륙작전이 이루어졌습니다. 밝혀내야 겠습니다. 수직계단 논&밭으로 상륙작전이 힘들고, 음력 달력으로는 바다의 물 때 흐름인 고조저조를 알 수 있지요. 내 조부께서는 UN연합군으로 차출 되어, 인천상륙작전하자고 건의 했다고 하면 믿기지 않을까봐 그냥 넘어가지요. 이젠 믿어야 됩니다.

세상에 민족이란게 없었습니다. 
그 동안 6.25사변 때 내 친 조부 전사 이후로 내 집으로 찾아 왔어, 그 동안 명절 때 제사밥 함께 차려 주기 위해서 찾아오는 친인척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리 집 외로운 집입니다. 다시 가르쳐 주는 것인데요, 마지막 남은 김유신 장군의 후예 집안 입니다. 선무원종 일등공신 훈련원 첨정 김희진 세계도(宣武原從 一等 功臣 訓鍊院 僉正 金希璡 世系圖 )대로 라면 저희 집이 마지막 남은 수로왕 김유신 후예입니다.
6.25사변 때 내 친 조부 이 나라를 위해서 싸우다가 전사를 하셨는데도 지난 반세기 동안 그 누구하나 고맙다고 인사차 찾아 오는 인간 없었습니다.
당연히 이 나라를 지키다가 죽으면 되는 것 처럼 남조선 국가보훈처 놈들은 말을 하더군요. 그런 남조선 국가보훈처 놈들 전부 피난민 양아치 집안 인데도 자기 친인척들을 애국자 만들어서 나누어 먹기 빵입니다. 친일파 매국노들 독립유공자 만들어 놓고 그러네요.

1950년 6.25사변 발발하기전에 남한은 당파 싸움은 심각한 상태에서 이승만이 전쟁없는 생각에 농번기 모내기 철이 다가오니까 5월 말부터 6월 초 사이에 얼마되지 않는 육군들  대 부분 다들 휴가를 보내 주었습니다.
6.25사변 발발 04시경에 T-34전차 300여대 앞세워 38선 허물고 남침을 하니까요.
이승만이 겁먹고 벌떡 일어나서 라디오 방송으로 서울은 끄덕 없다고 해 놓고서는, 당일 새벽에 서울 인도교와 철교 2개 다리 파괴 시키고 이승만이 혼자 살겠다고 서울 여의도 공항에서 비행기 타고 부산으로 제일 먼저 도망쳤습니다.


이승만이가 혼자 살겠다고 새벽에 서울 인도교와 철교를 파괴 시켰는데요. 서울 한강 이북 피난민들 새벽에 다리가 끊어 진 줄도 모르고, 맨 앞에 선 서울 한강 이북 피난민들 뒤에서 서로 피난길에 뒤엉켜  뒤에서 힘으로 미는 것에 의해 앞에 선 서울 한강 이북 피난민들 인도교와 철교 끊어진 곳에서 밀려 한강물에 빠져 엄청 죽었다고 하데요. 피난을 떠나던 서울 한강 이북 시민 수백명이 생명을 잃었다고 하데요. 이것은 좀 쪽팔릴 줄 모르지만 역사에 남겨야 된다고 하데요.



이승만이 농번기 모내기 철에 휴가 보내 준 육군들도 이승만이처럼 다들 함께 도망쳤습니다.
농번기 모내기 철에 휴가 간 육군들도 이승만과 함께 도망 쳐 버렸습니다. 그 때 도망친 군인들이 자기 6.25사변 이전 군번을 앞세워 싸워다고 우기고, 그런 늙은이들을 6.25참전용사 인정을 해 주고 국가유공자로 인정을 해 주고 있습니다. 거기가 어딘데 하면 국가보훈처입니다. 재향군인회 가스통할배들로 유명한 늙은이들랍니다. 그런 늙은이들이 자주국방 모르고 전시 작전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을 전혀 모릅니다.

이승만이 아주 죽일 놈 입니다.
김일성은 북한 T-34전차를 앞세워 남침을 했을 때 38선에서 승산이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새벽에 서울 한강 이북 사람들 총알받이 하기 위해서, 라디오 방송으로 서울을 끄덕 없다고 해 놓고, 서울 한강에 다리 2개 새벽에 파괴 시켜 놓고 제일 먼저 부산으로 도망친 양아치 대통이고, 당시에 일본에 주둔한 미국의 맥아더 사령부에도 전화한 적이 없었습니다. 부산으로 도망 친 이승만이는 숨기가 바빴습니다. 피난민 양아치 대통이 이승만이고 아주 나쁜 인간입니다.

6.25사변 때 파괴 된 서울 인도교와 철교
 세계 제 2차 대전 승리한  맥아더 사령관이 가락국(임나가라)일본에 계속 주둔 있든 맥아더 사령관이 잽싸게 쪼려서 남한 낙동강 오리알까지 올 수 있든 것은 이승만 이 씹새 사기꾼 대통이 주한미군 철수 시킬 때 좀 남아 있든 미군이 급히 맥아더 사령부에 전화해서 얼떨결에 맥아더 사령관이 6.25사변 한반도사에 개입하게 됩니다. 미국에서 한반도 빼앗기면 소련 스탈린한테 해상주도권을 빼앗길까 싶어 어떨 결에 UN연합군을 파병하게 됩니다.

6.25사변(事變) 때  낙동강 선 까지 밀려을 때 미군들이 군용트럭으로 의군(義軍)들을 징병 시켰을 때  경남 진해에서 군사훈련 2주 받다가 죽기 싫어서 거제 칠천도로 해서 헤엄 쳐 다들 도망 친 늙은이도 창원보훈지청에서 애국지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6.25사변 당시에 군사훈련 2주을 시킨 미군들이 미국 본토에 자료들을 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요. 스탈린은 김일성을 이용 만 했을 뿐 입니다. 소련은 한반도 땅 보다는 한반도는 지형학적으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 있어, 스탈린은 소련 땅이 얼음으로 꽁꽁 얼어 붙어 해상 주도권 해군력을 키우지 못함을 알고, 김일성한테 T-34전차 약 300여대 임대로 빌려 준 겁니다. 만약에 김일성이가 6.25사변 때 한반도 먹었다면, 바로 소련군들이 한반도로 내려 와서, 해군 기지 건설 한답시고 거의 뭐 다 죽어을 겁니다.

6.25사변 때 미쿡 미군 등신 새끼들 때문에 한반도(조선반도) 통일이 못 된 것이나 마찬 가지입니다. 인천상륙작전까지 다 좋았는데요. 인천상륙작전 계기로 북진 기회의 발판을 삼았다면 끝까지 밀어 붙혀야 했는데요.
압록강 일대까지 북진 했다가 1950년12월25일부터 연합군 이끄는 미군들이 자기네들 제일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시작으로 미쿡 자기네들의 최대 명절 신년 1월1일 추수감사절이 겹쳐 져서 연거푸 내려 약 10일을 쉰다고 압록강 일대에서 미군들과 연합군들 술과 승리에 기쁨에 빠져 들어 파티를 하다가 압록강 일대 매복되어 있는 중공군들의 기습 약 100만명 인해전술에 무너져 내렸습니다.실제 전장터에서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방심하면 안 됩니다. 흥청망청 놀다가 기습 공격으로 당한 것이 1951년 1.4후퇴 입니다.


상륙작전이란? 군사적으로 최후의 보류나 마찬가지입니다. 상륙작전을 하는 것은 지상 땅을 거의 적군들한테 점령 당했을 때 육지로 뚫을 수 없는 판단이 될 때 해상으로 통해 상륙작전을 감행함으로써 적군의 보급선 중앙 허리를 차단하므로써 우군한테 유리한 조건을 갖추게 할 수 있는 작전입니다. 상륙작전이 성공을 할여고 하면 육,해.공 모두 총 화력이 집중이 되어야 됩니다. 이 나라 장교 똥별 모두와 해병대들과 군인들한테 물어 보면 모두들 잘 모를 겁니다. 해군들은 더욱 더 모릅니다. 상륙작전을 왜 하는가 상륙작전이 왜 꼭 필요한 것이가 모두들 대 부분이 모를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좀 쪽발리지 모르지만, 6.25사변 때 한강 다리 2개 새벽에 이승만이 파괴 시키고, 서울 한강 이북 사람들 새벽에 다리가 끊어 진 줄도 모르고, 서로 뒤 엉켜 앞전 피난민들이 뒤에서 미는 피난민들에 의해 한강물에 엄청 빠져 죽었다고 합니다. 이런 것은 역사에 남겨야 한다고 하데요. 얼마 만큼 죽었는가 나도 몰라요. 하지만 엄청 한강물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 맺을 때 남한 측 사람들 한명도 자리에 앉지 않았습니다.

남측 대표로는 미군들이 UN대표 자리에 앉고, 북측 대표로는 북한군 수뇌부들이 휴전협정 맺을 때 자리에 착석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6.25사변 때 남한 사람들 거의 뭐 싸우지 않았습니다.

이승만이가 더 죽일 놈이라는 것은 6.25사변 기간 동안 피난길에 올란 양아치 대통이면서도, 3년 도망치다가 다시 정권을 잡았다면 6.25사변 때 싸운분과 6.25사변 때 싸우다가 전사한 유가족들 먼저 챙겨야 했습니다. 그런 거 하나도 없습니다.  이승만이는 오직하나 자기 밥그릇 권력에 눈이 어두웠고, 진짜로 이 나라를 위해서 6.25사변 싸운 분들이나 유가족들한테 상견례 인사도 없었습니다.  원래 나라를 지킨 사람이나 그 유족들은 적어도 당시에 모두 챙기지 않아서, 오늘 날에 이렇게 아주 저질스런 국가로 변했습니다.
지금 내가 보아서는 현재 이 나라 한국 크게 비젼이 없습니다.

위에 내 선조의 세계도를 보아서 잘 알겠지만요. 
 대를 이를 듯 말듯 아찔하게 선조대대로 이 나라를 위해서 싸우다가 전사하면 오늘 날 나까지 올지도 모르는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도 이 나라 사람들과 이 나라를 지켜 온 집안 입니다. 한국 사기꾼 나라 맞습니다. 6.25사변 때도 이 나라는 극소수의 분들께서 지킨 명예를 과연 많이 나서서 싸웠다고 허풍치면서 사기질 해도 되는 겁니까~!  6.25사변 때도 내 조부와 같은 극소수의 분들께서 지켜 낸 것을 지금와서 개나 소나 애국자랍십니다.

제목:유비무환이 안되어 있는 이 나라 남한 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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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무원종 1공신(宣武原從 一功臣) 이순신,권율,원균,임해군, 정원군 부, 순화군 부,인성군 공,의창군광 달성위 서경주, 해숭위 윤신지, 동양위 신익성, 당원임 지중추, 부사 송언신, 풍원부원군 류성룡,전병사 곽재우,좌찬성 김천일, 신 도승지 신흠, 영의정 윤두수,좌의정 김명원,우의정 심희수, 정 김완,증 도승지 고종후, 오성부원군 이항복, 주부 김희방, 군수 허균 이 정도 선무원종 1공신(宣武原從 一功臣)께서 너희 집 국가 난리(離) 막은 거 견적서 못 빼 내겠데요. 어럽데요.

한국 사람들은 63년 전 6.25사변사 비극까지 날조 시키고 있습니다.“임진지란(壬辰之)”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의 1等~3等 功臣 이름을 기록하면서 “원종도감(原從道監)” 설치하여 후세에 알리라고 하든 데요. 진짜 저의 옛 先祖들께서는 대(代)를 이을 듯,말 듯 하면서 대부분이 외동입니다. 저의 주변에는 가까운 친척이 없습니다. 내 집에 영감(선조)은 선무원종1등공신 훈련원 첨정 김희진 창 의군수장 녹훈 (宣武原從1等功臣 訓鍊院 僉正 金希璡 倡 義軍首將 錄勳.)이며, 일명 三壯士(삼장사[신응수,윤영상,김희진])이라고도 부르며,또는 삼문장(三門將)입니다. 거제 지세포성은 『(임진지란(壬辰之乱)』이 터졌을 때,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님께서 계셨든 삼도통제부(三道統制府)입니다.

 이 나라 남한 사회는 자기네 친 조상도 아닌데요.
예를 들어 백정 김해 김씨들 어떻게 과거 내 친 선대 이름 시조 수로왕부터 56세까지 만 기록 된 내 친 선대들의 존명을 어떻게 빼 내 나갔는지, 중간의 옆 줄 하나 더 많이 만들어 엉터리 이름을 지어 내  백정 쌍놈 김해 김씨들 경파, 삼현파,사군파 기타 등 물갈래파(派)로 나뉘어 조폭 집단 사회 같네요.  

 
1.가야연맹국가(伽倻聯盟國家)에서 단일 국가 가락국(駕洛國)으로 고쳐 잡아야 됩니다.

2.현재 국정 역사 교과서에는 이렇게 쓰고 있지요. 1300년 전 통일을 삼국통일 아래 대동강 이남 통일로 왜곡 시켰습니다. 김유신 내 선조의 업적은 통합삼한(統合三韓) ,十四世 김삼광 (金三光) 이손 당 원좌 무중랑장(伊飡 唐 援左 武中郞將)으로 당 나라 군사를 지휘 했기에요~ 나,당 연합으로 통일===>개정판}▶아무리 나,당 연합이라고는 하지만, 통일(통합)이 후 당나라 군사들을 신라로 다 귀화 시켰다면 자력 통일로 보아야 할 것이다.

3.불완전한 통일이라고 쓰는데 이것 역시 신라 말기에 각 신하들이 위로 진성여왕을 한명을 모시고, 충신으로 역할을 다 해야 되는데, 신하들의 권력 패권 싸움에 휘말려 무방비 상태에서 960년 당나라 침략에 의해 영토를 다 빼앗겨 다고 기록해야 됩니다.

4. 고려 시대 때 몽고 징기스칸 침략을 막은  한충 찬화 공신(翰忠 化 功臣)에 대해서도 밝켜 져 이 세상에 알려야 됩니다.

5.고려의 진짜 마지막 왕도“‘호고봉 충렬왕 명공 사국 금 백의(號孤峰 忠烈王 命公 使國 禁 白衣)” 충렬왕 이라고 바꾸어야 됩니다. 이는 선무원종1등 공신 훈련원 첨정 김희진 세계도(宣武原從 一等功臣 訓鍊院 僉正 金希璡 世系圖) 임진지란(壬辰之) 공신들이 고증하여 믿는 것입니다.

6. 1592년 400여년 전에 전란() 명칭도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아니고, 임진지란(壬辰之)이라고 고쳐 잡아야 됩니다.
 
7, 일정시절 36년 금전치욕 세월 조선 내에 친일파들이 더 많았습니다. 일정시절 일본군관에 충성한다고 자진 충성 한 답시고, 완장 찬 인간말종들이 오늘 애국 지사가 되어 있습니다.
8. 1950년 6월 25일에 터진 6.25전쟁기념행사 또는 6.25한국전쟁 아니고, 6.25사변한반도사 아님 6.25사변조선반도사 라고 해야 됩니다. 6.25한국전쟁은 틀린 말입니다.

1950년 6월25일 일요일 북한에서 38선을 허물고 소련제 T-34땅크 300여대 앞세워 남한으로 선전포고 없이 기습 침공하여, 낙동강 오리알 신세에서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진하여,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까지 갔다가 다시 중공군 인해전술에 의해 다시 1951년 1월 4일 후퇴를 거듭 했었습니다.
그럼 한반도 내에서 오고 가고 했기 때문에 6.25사변사인데, 이렇게 불러야 됩니다. 6.25사변 한반도사 아님, 6.25사변 조선반도사라고 해야 됩니다.


 
☞이런 것은 상식적으로 알아 두면 좋아요~
국가(国家) 전란(戦乱)의 종류는 크게 2가지 입니다,.「전쟁사(戦爭史)와「사변사(事變史)」이렇게 2가지 입니다,.
「전쟁사(戦爭史)란 한 나라가 상대국에 선전 포고를 하고 침략하는 일.」 
「사변사(事變史)란 한 나라가 상대국에 선전 포고도 없이 침입하는 일.」
통상 이런 것을 가리 켜 통상 전란(戦乱)이라고 합니다~

다음에 사변과 전쟁 차이점을 올려 있데요. (※ 클릭)

네이버 사전에서는 전쟁과 사변을 구분을 시켜 놓고 있습니다. 분명이 말아컨데 전쟁과 사변은 구분이 됩니다.




또, 이런 것은 상식적으로 알아두면 좋습니다.
군인(軍人)은 나라에 녹은 먹는 상태에서 국가 난 전란사가 찾아 오면 군인 신분 상태에서 나라를 지키는 것은 군바리입니다.
의군(義軍)은 나라에 녹은 먹지 않고, 집에 가정사를 돌보다가 국가의 큰 어려운 난(乱) 전란사에 출병하는  민간 신분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군으로 편입되어 싸우는 것은 의군입니다.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의 배포 날짜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임진지란(壬辰之乱)을 평정하고 만력33년(선조1605년) 4월16일 행 도승지 신흠(선무원종1등 공신)이란 분이 선무원종공신과 임진지란(壬辰之乱) 중 전사한 유족(선무원종공신)을 한양에 불러 모아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을 배포 합니다. 위에 필체는 도승지 신흠의 필체 입니다. 오늘 날 이렇게 될 줄 알고 선무원종공신녹권내에 함께 포함 시킨 것이 선무원종 1등 공신 훈련원 첨정 김희진 세계도(宣武原從 一等功臣 訓鍊院 僉正 金希璡 世系圖)를 기록 받습니다. 그리고 위에 역사는 진실 된 겁니다. 6.25사변 때 내 집으로 피난 온 놈들이 역사 자료와 조선 조정에서 받은 벼슬 품위서와 호패를 다 도적질 해 갔습니다. 위에 세계도(世系圖)는 이 나라의 역사를 기록 해 둔 것입니다.

『이 나라 진실의 역사』가 이 나라 사람들과 아시아에 널리 알려 질 때까지 이런식으로 계속 중복해서 올릴 겁니다. 친일파 나라 팔아먹은 이완용 조카가 쓴 친일파 매국노 이병도가 엉터리 사학한 것은 접어야 됩니다.

경남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 300 번지 선창부락 또는 삼도통제부

가락국 수로왕 원대손 78세손(駕洛國 首路王 遠代孫 七十八世孫) 김현우 金鉉佑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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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수로 어여쁜 나이 어린 내 마눌 박보영


♥ 억수로 어여쁜 이뿐

나이어린 내 마

박보영이는 하느님과

동기 동창생이며, 부

님보다는 더 높고, 떠오

눈부신 양과 같

,세발에 쨉도 되

지 않고 ,일개 따까리

입니다.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어도 그것은 억수로 어

여쁜  이나이어린 내 마

눌 박영의 은총입니다.



내 마눌 박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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