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3월 서북도 최전방 대청도 221기지 처녀출동 나서서 암초밭에서 좌초 당한 PKM-352호정 사고 내용( 사고 사진 첨부) 고속정/경비정

 제일 바깥쪽에 있는 함정이 PKM시리즈 PKM-325호정은 3차선 후기형이고,가운데 있는 함정이 PKM시리즈 PKM-233호정이 1차선 전기형이고, 안쪽에 계류 된 것이 PKM시리즈 2차선 PKM-297호정은 중기형이다. 아래 사진 편대가 1992년 3월 13일 서북도 최전방 대청도 221기지 처녀출동 나서서 때 기러기(현:참수리)PKM-352호정 정박 계류를 알 수가 있었다.

처음 처녀 첫 출동 나서는 기러기(현:참수리) PKM고속정은 중간 아님, 안쪽에 계류 정박 되어 있어야 했다. PKM-235호정이 제일 안쪽에 계류 정박되어 있었고, PKM-283호정이 가운데 계류 정박되어 있었고, PKM-352호정 제일 바깥 쪽에 계류 되어 있었다.

흔히 PKM 고속정 시리즈  전기형,  중기형, 후기형이라 불러워 진다. 
내가 소속된 편대는 인천 제 2함대 2전단 263편 PKM-235호정(전기형),PKM-283호정(중기형),PKM-352호정(후기형) 이렇게 3척이 일개 한 편대이다. 

예를 들어 352호정 처녀출동 나서서 대청도 221기지에 도착 했을 때 당시에  좌측부터 아래 사진과 비슷무리하게 대청도 221기지에 263편대 정박도가 비슷했었다.  PKM시리즈 325호정 후기형, 233 호정 전기형, 297호정 중기형으로 보기 드물게도 같은 한개 일개 편대이었다. 
백령도 인근 NLL선으로 북한해군 군함이 남하 해서 내려 온다는 정보를 얻고, 백령도 쪽으로 넘어 오는 북한해군 함정 NLL으로 넘어오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서  1992년 3월 13일 새벽에 04시 42분 경에 처녀 긴급출항 때 사고 나기전에 출항을 하면서. 기관조종실(EOS)에 내 부하 보수장 김성철과 기관수병 강순우도 있었고, 동기 전기장 이건민 중사도 있었고,내연장 박래홍 중사도 있었는데,직별장 기관사 이정태 상사가 No 1발전기 통풍관이 열려 있는가 닫혀 있는가 한 번 나가서 확인 해 보고 들어 오라고 했었다,

막상 갑판상으로 나와서 혼자서 No 1발전기 통풍관 쪽으로 나서보니, 앞시야를 확보 할 수 없을 정도로 안개가 짜욱하게 끼여 있었다.

좌현측 가드라인 더듬어 가까이 No 1 발전기 통풍관쪽으로 가서.No1 발전기 통풍관이 닫혀 있어, No 1 발전기 통풍관을 열고 다시 기관조정실에 들어와서 기관수병 강순우가 앉자서 쓰고 있든 기관반전기록부를 내가 받아쓰기 위해서 접이식의자 앉자마자, 31노트 고속으로 올리자 마자 04시 57분 경에 암초밭에서 좌초가 되었다.내가 약 10여 초 기관조종실(EOS)로 늦게 들어 왔더라면,나는 그때 전사를 당할 뻔 했었다. 암초밭에서 큰 충격으로 좌초를 당했을 때 순식간에 정신을 잃었다. 나는 사고 때 기관조정실 내에 기관실 측 모서리에 몸이 나가 부디쳐 약간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잃어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니,  허리가 뻐근지근하게 아팠다. 사고 후 순식간에 일들이었다.

서북도 대청도 221기지 처녀 첫 출동 나서서 3월13일 새벽 04시57분 경에 사고 나기전에 정박 계류가 되어 있었다. 처음 처녀 첫 출동 나서는 기러기(현:참수리) PKM고속정은 중간 아님, 안쪽에 계류 정박 되어 있어야 했다. 내가 승선 했든 당시 최신형 PKM-352호정이 제일 바깥쪽에 엉성하게 계류 정박 되어 있었다. (352호정 사고 당시 긴급출항 순서, 352호정, 283호정, 235호정)

참조 삼아 안개속에서 항진하는 참수리 PKM-335호정 사진을 올린다. 새벽이고 앞 시야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안개가 짖게 껴 있었다.
막상 암초밭에서 좌초가 되고 직별장 기관사 이정태 상사께서는 큰 충격에 북한 해군한테서 함포 얻어 맞은 줄 알고, 주 메인 끄라고 하면서, 잽싸게 EOS(기관조정실)실 밖으로 뛰쳐 나가 버리고, 엔진을 끄라고 해서 끄고, 전기장 이건민이가 기관조종실 위 헷치카바 갑판상에서 겁에 질려 나한테 Co2자켓 하나 던져 달라기에 내가 작용하고 있든,Co2자켓를 던져 줘 버리고, 또 내가 Co2 자켓를 작용해서 기관조종실에서 군사법정에 서게 될 경우에는 우리 기관부 책임이 아님을 밝키기 위해서 기관부일지와 기관부반전기록부를 챙기고 있는데,기관수병 강순우가 기관실 문 앞에서 와서 겁에 질려 나보고 Co2자켓을 던져 달라기에 기관수병한테 Co자켓를 던져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싸가지들이 없었다.

그런 그 대형 사고 때 기관조정실에서 No1침실에 가서 내 캐비넷에서 6.25사변 조부 사진 두장 꺼 내 오기 위해서 맨 마지막 갑판 위로 나오니까! 사고 낸 보스 정장 변종호 대위가 함교 뒤편 20mm시발칸포 쪽에서서 『352호정 희망 없으면 다들 이함 하라고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함미 갑판상에서 이함 할여고 있든 대원들한테 내가 이런 말을 했다.
『안개도 끼여 있고, 동서남북이 어딘지 잘 모르겠고, 이렇게 함내 발전기 돌아가서 나는 이함하지 않을꺼라고 하니까,』 내 곁에 있든 한양대학교 ROTC출신 학사 장교 기관장 윤정식 소위가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해서, 그래서 모두 뿔뿔이 흩어져 함내 구멍 난 개소를 찾을 수가 있었다.

특히, 갑판장 배상일 중사는 사고 전에 화장실에 용무를 보고 있었고 한다나요.
암초밭에서 좌초가 되고, 화장실에서 뭐(똥)를 닦았는가 모르겠다고 했고, 갑판상에 구명정을 터트려 이함을 하기 위해서 준비를 하기 위해서 자기가 담당하는 구명정을 사용을 할 줄 몰라서,자기 직별 졸따구 갑판하사한테 물어보기도 했다고 했었다. 당시 대 부분 대원들이 이함 할여고 했든 것으로 알고 있다.

구명정

제일 크게 아작이 난 곳이 기관실이었다. 독일제 MTU감속기# 1,2 2개가 두동강이 나면서, 기관실과 발전기 격벽이 찢어져 스턴튜브에 바다 해수가 엄청 들어 왔었다. 내연장 박래홍 중사와 동기전기장 이건민 중사가 스턴튜브에서 몸으로 구멍을 막고 있을 때 나는 함께 구멍난 개소를 찾고 다시 기관실조정실에 서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통신장 유용국 중사가 나보고 통신실에 오라고 불러서,통신실에서  통신장 유용국 중사가 지금 침수량이 어느 정도 되냐고 묻길래~  물이 많이 들어오는데, 어떻게 알 수 있냐고 하면서, 알아서 보고 하라고 하기도 했었다.

갑판수병 유찬희는 겁에 질려 기관실 계단에서 미소 띄고 있는 내 모습을 쳐다보고 왜 웃냐고 묻길래~
너무나도 큰 사고이고 어이가 없어, 내가 이런 말을 했었다.  우리가 정신 못 차리다가 이런 사고 난 것 아니냐고 말을 했었다. 
가솔린 엔진 펌프 GP Series를 사용 계속 누수되어 들어오는 해수를 바다로 퍼 내면서 까지 약 4시간 사투(死鬪) 끝에 날이 밝고 안개가 거치고, 같은 편대 고속정 2척 352호정 주변에 지켜만 보고 있었다. 352호정이 LCM에 끌려 대청도 221기지에서 복귀 할 수 있었다.
LCM에 끌려 대청도 221기지에서 정박이 되어,직별장 기관사 이정태 상사께서 기관조정실(EOS)에서 기름탱크에서 바다 물이 새어 나올지 모른다고 하면서, 어떻게 하면 구멍 난 곳을 알 수 있냐고 다들 물어 볼 때, 내가 바닥에 떨어진 사인펜으로 유류게이지 세개에다가 선을 끄어 주었다. 그래서 기름탱크가 구멍 난 곳을 또 하나 더 찾을 수가 있었다. #1번 기름탱크에서 구멍이 났었다.

다음 날 SSU해난구대 내 동기 2명 구멍난 곳을 메우기 위해서 PKM-352호정으로 왔었다. 동기 이름 한명은 알겠는데, 한 명은 모르겠음!
김수철이라는 동기는 PKM-352호정 수중 밑으로 가서 구멍 난 곳을 메우고 나와서는 이 큰 대형사고에 아무도 안 죽고 살아서 돌아 온 게 기적이라고 했다.

3월 14일 토요일 오후 19시 경에  인천 제 2함대로 피예선 되어 끌려 가지전에 PCC초계함 함미 갑판에서 352호정 계류 시키니까,내가 경남 진해 해군작전사령부 5전단 53전대 LSM-655거문함을 함께 탔든 장유수 내연장 상사되어, 나를 쳐다보면서 하시는 말씀이 통신 내용 다 들었다. 내연 하사로써 진짜로 큰 일 해 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나왔다.

3월 15일 07시경에 352호정이 인천 제2함대 기지에 도착해서 부두 계류 시키니까, 인천 제2함대 정비창 군무원들이 떼거지로 와서 기관실을 둘러보고 어쩌다가 이렇게 깨 먹었냐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었다.

3월 16일 월요일 PKM-352호정을 플로팅도크에 올려 놓고 보니, Main shaft 2개 엿가락처럼 휘어 프로펠러와 라더와 딱 붙어 있었고, 구멍난 #1기름탱크 선저는 흉하게 찌그러질 만 큼 찌그러져 있었다.

 나를 포함한 352호정 대원들은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 받기를 원했었다.  나를 비롯 대원들 어디어디 아프다고 하소연을 해도 병원에 가서 한 번 쯤 치료를 받아 보란 말을 아예 안했다. 인천 제 2함대 사령관을 비롯 해군 수뇌부가 당시에 얼마나 썩어빠졌는가 알 수가 있는 대목이다.  

352호정은 대대적인 대 수리였다. 감속기어 2개 교체 Main shaft 2개 교체 프로펠러 2개 교체, 라더 2개 수리, 구멍난 #1기름탱크 선저는 흉하게 찌그러질 찌그러진 곳이 용접을 해서 철판을 1톤 더 붙혀 일반 PKM고속정은 배수톤수가 155톤 나가는데, 352호정 156톤 더 많이 나간다. 허리가 아프다는 군소리 않고 묵묵부답(孤軍奮鬪)식을 352호정 살리는데 투혼을 발휘 했었다.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인수한 지 약 6개월 암초밭에서 좌초를 당했으니, 해군 수뇌부들을 352호정 꼬라지를 쳐다보면서, 한 마디식 내 뱉는데, 주로 이런 말이었다. 페인트도 마르기전에 다 깨먹었네... 이 큰 사고에서 아무도 안 죽고 살아서 돌아온 것 만으로 기적이라고 했었다.

사고 날 때 나는 기관부요원이라서 EOS(기관조종실) 있었기 때문에 잘 몰랐는데, 352호정이 암초밭에서 좌초가 되면서 45도 기울어졌다가 오뚜기처럼 다시 섰다고 조타실에서 근무했든 부하가 설명을 해 주었다. 사고 때 45도 기울어졌을 때 전복(顚覆) 되었다면 나를 포함 32명 전사 처리 될 뻔한 대형 사고 였다. 오뚜기처럼 기적으로 서는 바람에 모두가 살 수가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 사고 전 직별장 기관사 이정태 상사 명령으로 #1발전기 통풍관이 열렸는가 닫혀는가 확인하고 들어오라고 했을 약 10~15초 정도 내가 EOS(기관조종실)로 늦게 들어 왔더라면 전사처리 될 뻔한 사고였다.

직별장 기관사 이정태 상사는 352호정 수리 내내 정비창 군무원들한테 3개월 동안 빨라 보았자 24노트로 전대 편대로 편입 될 것이라고 할 때 내 투혼이 서려 있는데, 38노트 정상 속도 찾아서 다시 전단 배로 편입되어 서북도 최전방 NLL 사수 할 수 있을거라고 낙관 했었다. 352호정 3개월 후 플로팅도크에서 물에 띄우전에 정비창 군무원 추진반 반장님께서 이 배에서 니가 제일 고생을 했다고 하시면서, 오늘 우리 회식하는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얼마 후 352호정 영외거주자 회식을 하는 가자는 것이었다. 한 번에 2개 회식 초대 받은 것은 나 밖에 없을 것이다. 내 소속이 352호정이라서, 정비창에 전화해서 352호정 영외거주 회식이라서 군무원 회식자리에 함께 못 가서 미안합니다. 전화 끊고 어쩔 수 없이 352호정 대원 회식자리로 갈 수 밖에 없었다.

3개월 수리 막판에 접어들어 352호정 기관실 바닥 철판에 들어 누워 정비창 고속반 군무원들한테 어지러워서 일을 못하겠는데요.  정비창 고속반에 홍병우 군무원이 이젠 일 다 끝이 났다 그말에 나는 다시 일어나서 발칸카프링 연결 작업을 하고서는 다음 날 시운전이 남았다. 

1992년 3월 13일 끔직했든 PKM-352호정 참혹한 모습, 사진은 3월 16일 플로팅 도크에 올려 놓고 352호정 파손 부위 사진을 해군정훈사가 파손 부위를 찍은 모습이다. 나도 나 자신이 352호정 모습을 보고 엄두도 못낼 정도로 기적으로 살아 남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허리 부상을 입고도 남들한테 아프다고 말을 하지 묵묵부답(默默不答) 식 352호정 살려서 다시 최선봉에 나서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투혼으로 고군분투(孤軍奮鬪)했었다.  사고 난 352호정은 부산한진중공업에서 인수한지 6개월 정도 된 당시 신형으로 싯가 150억원으로 이 나라를 지킨다는 352호정도 구하고, 31명 대원들 바다로 이함 못하게 막았다. 내가 31명 대원들이 바다로 이함하든 말든 냅두었더라면 바다 수온이 낮아 심장마비로 거의 다 순직했을 것이다. 나는 바닷가 출신이라 이런 말에 세뇌가 되어 있었다. 뱃놈이 배를 버리면 꿂어 죽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고를 낸 변종호 대위와 나와 함께 남을 뻔 했었다.
 
 



시운전도 한 번에 성공한 것이 아니다. 삼 세번 만에 시운전에 성공을 할 수가 있었다. 
352호정 LCM 끌려 나서 첫 날에 메인엔진 시동을 걸고, 2개 감속기어가 돌지 않았다. 실망이었다. 다시 인천 제2함대 기지로 복귀,  #1,2 감속기어 콘트롤박스 취외해서 나와 홍병우 군무원과 이우학 군무원 정비창까지
정비창에서,  #1,2 감속기어 콘트롤박스 올 분리해서 크리닝 했는데, 홍병우 군무원 이우학 군무원이 가만히 서서 조립을 못하겠다고 서 있을 때 내가 나서 감속기어 콘트롤박스 1개 조립을 해 놓으니까, 홍병우 군무원 이거 어떻게 알았냐고 나한테 묻길래~
독일 엔지니어한테 MTU 엔진 도면 해독법을 배워, 도면 만 보고 있었다고 했었다. 두 번 째 날에 시운전 나서 메인엔진 시동후에 한 쪽 감속기어는 돌아가는데, 한 쪽 감속기어가 돌지 않아, 다시 인천 제2함대 기지로 복귀, 홍병우 군무원과 이우학 군무원과 감속기어 콘트롤박스 취외해서 정비창으로 가서 감속기어 콘트롤박스 올 분리해서 소제 후 다시 352호정 감속기어 콘트로박스를 감속기어에 조립 다음 날 메인엔진 시동 양현 앞으로 하나 스로틀 올리자 마자, #1,2 감속기어가 돌아가는 것이었다. 천천히 속도를 올리자 1950RPM까지 올리자 38노트로 쾌속 항진을 하는 것이었다. 군무원들과 352호정 대원들 다 듣는데 큰 소리로 해 냈다.



기관실에 내려가 우측 격벽을 보니 검은 오일 같은게 묻어 이상하다 생각이 들어 우측 오일 플라그가 빠져 우측 격벽이 오일로 범벅이 되어 새어 나오는 것이 었다.. 나는 맨손으로 플러그가 빠진 오일이 대량으로 새어나오는 뜨거운 곳을 육탄으로 막고, 직별장 이정태 상사는 뜨겁다고 손을 놓으라고 하고, 나는 직별장 이정태 상사한테 빨리 엔진 끄라고 하고 외치고 다행이 직별장 이정태 상사가 #1 메인 엔진을 끄는 바람에 엔진을 구워 먹기 일보 직전에 엔진을 구할 수가 있었다.  

다시 이 나라 서북도 4천 500백만의 생명선  NLL선을 지킬 수가 있다. 자부심 긍지가 앞섰다.

PKM-352호정이 어느 정도 정상화 되고, 1992년7월 쯤인가 8월 쯤에 윤정식 기관장이 불러 기관장실에 들어서자마자.
기관장이 나보고 사고부터 사고수습까지 공(功)이 크다고 하면서, 내 개인 이름 앞으로 상이 하나 나와 있는데, 지금 전역신청서를 취소하고 군에 말뚝 박으면 이상을 준다고 조건을 붙이길레~ 나는 352호정이 암초밭에 좌초당하면서 허리에 부상도 입었고, 쉬지도 못하고 352호정 수리에만 전념 했기 때문에 힘겨워서 군생활이 힘들어 전역을 해서 나갈거라고 하니까. 기관장은 그럼 이 상은 군생활 계속하는 이정태 상사한테 넘긴다. 그럼 알아서 하세요, 기관장실 문닫고 나와었다.

그 당시에 이정태 상사한테 빼앗긴 내 명예 다시 찾고 싶다.


352호정 사고 이후로도 고군분투 해 주었다. 나는 신임 정장 이헌상 대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352호정 자기가 안 깨 먹었다고 고생한다는 말 한 마디 없었다. 이헌상 대위는 마치 자기를 위해서 충성하란 뜻으로 거만성이 심각했었다. 이헌상 대위 별명이 이밥상이다. 내가 애터지게 고생해서 352호정을 수리한 보람을 못 느끼게 했었다.   
     

352호정 사고로 직위해제가 3명 당했다. 사고를 낸 보스 정장 변종호 대위와 전탐장 정명훈 중사 이렇게 직위해제를 당했다. 사고 낸 정장 변종호 대위 직위해제 되어 352호정에서 내릴 때 나보고 한 말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한테 잘해 주어서 고맙다, 너는 영원히 못 잊을 것이다.” 전탐장 정명복 중사는 나보고 352호정 너하고 오래 타고 싶었는데, 이렇게 먼저 떠나간다.

이 나라를 지켜 줄여고 하다가 군에서 골병 들었음...,

※국방부 측과 보훈처 측과 해군 측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352호정 사고 내용을 영화를 한편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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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123 2020/03/10 16:05 # 삭제 답글

    352 전탐출신입니다.
    어쩐지 기관문제가 많더니 좌초됬었던적이 있었네요
  • 首露王 遠代孫 金鉉佑 2020/12/27 16:32 #

    제가 352호정 초기멤버이자,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인수요원이면서도 직접 인수를 했고, 1992년 3월에 서북도 해군 최전방 기지 대청도 221기지에 첫판 처녀출동이자, 첫판 처녀긴급 출항 암초 밭에서 좌초를 당해야 했습니다. 물론 직위해제는 3명이 당했습니다. 당시에 사고만 나지 않았도 한국해군 신기록을 세워을 겁니다. 대청도 221기지 방파제 벗어나는데 5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후기형 PKM급 고속정 배수톤수가 155톤인데, 352호정은 156톤입니다.
    선저 #1 기름탱크가 흉하게 찌그질만큼 찌그져 있는 상태에서 구멍 났거든요. 구멍이 난 곳에 용접으로 땜빵하고 전저 1톤 철판을 더 붙혀 타 고속정에 비해 1톤이 더 많이 나가는 156톤입니다.

    타 다른 PKM급 고속정은 하자수리 3번 받는 걸로 알고 있는데, 352호정은 부산한진중공업에서 하자수리 2번 밖에 못 받았습니다.


    사고로 인해 선체 변형을 가져 온 탓입니다.352호정 진동 심하죠!

    당시에 감속기어가 전 함대에도 없든 것을 어렵게 중고품 셋트로 교환 했거든요,
    RPM도 짝통입니다.
    예를들어 고속 항해시 #1 메인엔진 100RPM 놓는다면, # 2메인엔진 50 RPM 놓습니다.

    352호정이 고속으로 운항 할 때 전탐레이더 화면이 끄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자이로가 끄질 때마다. 함내 방송으로 전기장 찾고... 고속으로 항해 할 때다. 가끔 라더문제가 있어 352호정 선체가 크게 휘청 거랄 때도 있었으니까요.352호정도 퇴역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아무조록 나한테 후배 일 것 같네요. 코로나 19조심하시구요,
    난파선 352호정 탄다고 고생 많이 했습니다.

  • 2020/03/27 15:4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首露王 遠代孫 金鉉佑 2020/03/28 08:43 #

    후배님도 응급 대처 능력이 대단합니다.


  • 2020/12/26 02:58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首露王 遠代孫 金鉉佑 2021/01/02 06:31 # 답글

    352호정을 지금까지 굴러 먹고 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수리하는데 3개월 동안 쉬지도 못하고 중노동이였습니다.

    아쉽지만 퇴역 할 시점이 되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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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수로 어여쁜 나이 어린 내 마눌 박보영


♥ 억수로 어여쁜 이뿐

나이어린 내 마

박보영이는 하느님과

동기 동창생이며, 부

님보다는 더 높고, 떠오

눈부신 양과 같

,세발에 쨉도 되

지 않고 ,일개 따까리

입니다.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어도 그것은 억수로 어

여쁜  이나이어린 내 마

눌 박영의 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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