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사태가 무슨 얼어 붙어 죽을 놈의 광주민주화운동이야 육상 훈련/작전

광주사태 주범 전남대남학교 대학생 폭도생들과 조선대학교 대학생 폭도생들의 노래

노래 제목: 광주사태 찬양가

조선대학교 대학생 폭도생들 결사를 옹위하리라~
우리가 틀어잡은 총검마다엔
도요타 다이쥬 지휘관 보위 해갈 맹세가 비꼈다~
붉은기 날리는 광주사태 수뇌부
조선대학교 대학생 폭도생들이 총폭탄되여 결사옹위하리라~
광주사태 도요타 다이쥬 지켜싸운
그 넋을 이어 피끊는 우리 가슴 성새로 뭉쳤다~
조선대학교 심장인 혁명의 수뇌부
조선대학교 대학생 폭도생들이 총폭탄되여 결사옹위하리라~


광주시민들 아직까지 도요타다이쥬(김대중)와 전남대학교 폭도생들과 조선대학교 대학생 폭도생들한테 당한 그 치욕들 모르나 봐~

1980년 5.18은 광주민주화운동 아니다. 광주사태가 맞다.

아래 사진은 5.18 광주사태 원흉은 김대중(도요타다이쥬)이가 전남대학교 학생들과조선대학교 학생들을 선동질해서 광주 각 파출소와 경찰서에 배치 된 무기 소병기 소총들을 갈취하는 과정에서 조선대학교 대학생 폭도생들이 무고한 광주 당직서는 경찰관 짭새들 다 죽이고, 소병기 M-1소총과 카빈 소총 무기들을 빼 나와서 광주사태 한달 동안 했다.  광주사태 첫 날 모습이다. 소병기 치고는 기관총까지 갈취 하고 다이너마이트와 수류탄까지 갈취했고, 군용트럭과 군용 지프차까지 탈취해서 분란을 일으켰으니 얼마나 큰 사건인지 알 수가 있다.


5월 21일 낮 12시까지 도청광장에 무장시민군 3만명 포함한 20만명 이상의 인파가 모였을 때 모두가 무장봉기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시체 유언비어와 선무방송에 잠시 선동되었을 뿐이요, 무료로 도청광장까지 차로 실어다 주니깐 왔을 것이다. 그러나 주동자측에서는 달성 목표가 있었으며, 그 목표가 투사회보로 공식 발표되었다. 그러면 시민군 편에서 그런 필요가 절실하였을 때 발생한 몇명의 시민군 의문사 사건에 대해 어느 측에 책임이 있으며, 어느 편에 의혹의 시선이 집중되어야 하는가? 사고발생 당시 사고발생 지역에서의 유일한 총기무장단체는 5.18무장단체였다. 그리고, 시민군 총기 오발 사고에 의한 사망사고가 여러 차례 있었음도 우리는 알고 있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살인마라고 부르는 것은 부당한 누명임은 전두환 김대중 두 인물의 전혀 대조적인 리더십 스타일을 비교해 보아도 알 수 있다.
김대중같은 간웅도 자기가 데리고 있던 문세광을 사주하여 1974년 광복절에 암살하려 했던 대상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하물며, 대한민국 육사 출신 중에서도 가장 영웅호걸로 정평이 나있었던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무명의 이분을 상대로 작전지시를 하셨을리 있겠는가? 김대중과 전두환은 전적으로 다른 인물이었다. 김대중은 배후 조종하는 인물이기에 정치9단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두환의 리더십은 그런 리더십이 아니었다. 그는 작전지시할 때 언제나 선봉에서 뛰었다. 특전사 시절 그는 별을 달고 낙하시범을 보여주는 유일한 장성이었으며, 보병 사단장 시절 그는 모든 구보 훈련에서 항상 선봉에서 달리는 장군이셨다.

광주사태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광주에 오신 적도 없으셨으며, 그 누구와도 광주사태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신 바도 없다. 따라서 위의 영상물 청년의 살해범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다는 주장은 지성인에게는 불가능하다. 12.12사태의 경우 당신이 한 당사자였음을 1980년 8월의 전역식 때 스스로밝히시지 않으셨던가. 그리고, 언제 어디서 어떤 역할을 주도하셨음을 훗날 상세하게 공개하지 않으셨던가. 만일 광주사태 당시 폭동진압에 조금이라도 관여하신 바 있으셨다면 숨기실리가 있었겠으며, 정웅 소장, 소준열 장군 등 호남 출신으로서 광주향토사단 지휘관들이었던 분들이 입을 닫았을리가 있겠는가.

"전두환 살인마 처단" 주장은 본래 지성인들이 확보한 객관적 증거나 물증에 근거한 주장이 아니었다. 광주시민 대다수는 전두환이 누군지 전혀 몰랐었고, 광주시청 직원이려니 여기고 있었음에도 주동자들 편에서 "전두환 물러가라" "전두환 아가리를 찢어죽이자" 등의 구호를 내걸었던 이유는 도시 게릴라 방법을 위해서였다. 쿠바의 공산당 게릴라들이 썼던 방법대로 광주시민군을 무장봉기에 동참시키기 위해서는 민중의 증오심의 표적이 필요하였기에 전두환이란 이름을 이용하였었던 것이다. 그러나, 광주사태는 이제 더 이상 한 특정지역의 전유물, 어떤 특정 그룹 이해관계를 위해서만 주장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일부이다. 비록 힌츠페터가 광주에 도착한 날 "전남국을 만들자"는 구호가 광주역 인근 시민군들 사이에서 외쳐졌다 하더라도, 5.18 사건은 이제 한국근현대사의 일부이며, 따라서 객관적 증거를 지성하는 지성인들이 그 논의에 참여해야 하는 사건이다.

1980년 5월 18일은 도요타다이쥬(김대중)이 전국적 민중봉기라는 수단으로 쿠데타를 일으키기로 예정된 날이었다. 북한군 증언에 따르면 광주사태 때 침투되었던 북한군 여기 이 시민군 보초병과 같은 장발을 하고 시민군으로 위장하였다 한다.

5월 17일에야 그 정보를 입수한 정부가 비상국무회의를 소집하고 5월 18일 0시를 기해 517 긴급조치를 선포하였다. 그러나,  도요타다이쥬(김대중)의 내란 음모를 저지하려는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광주에서는 5월 22일 광주시청에서 태극기가 내려오고 인공기가 게양되었으며, 전라도 도청에서 광주 해방구가 선포되었다.

해방구는 공산당 자치행정구를 의미한다. 민주주의 국가인 개한민국 영토 내에서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대부분의 소시민들은 어디서 장갑차와 기관총과 수류탄과 다이너마이트 폭약과 예비군 무기 등을 탈취해야 되는지 모른다. 그 어떤 배후 조직이 사전에 치밀하게 유혈 무장 폭동을 준비하였다가 그들의 시간표대로 5월 22일에 광주시에 인공기를 게양하고 광주에 해방구를 설치하였으며 도청을 해방구 사령부로 삼았다.

분명히 광주사태는 민주화운동이 아니었음에도 그것을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는 논리가 계속 미국문화원들에 방화하며, 반미운동을 일으겨왔다. 그러나 도요타다이쥬(김대중)이 국고를 탕진하며 김정일에 제공한 20억불이 핵무기 개발과 전투기 구입 등 전쟁준비로 사용되고 있는 이때에 주한미군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 나쁜 열매가 그 씨의 정체를 탄로시킨다. 광주사태가 민주화 운동이었다는 거짓 논리가 한총련 같은 반국가단체, 전교조 같은 왜곡 교육단체들이 생겨나게 하며 우리나라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광주사태의 진실이 왜곡에 감추어져서는 아니된다. 실로 지금은 주동자들이 퍼뜨린 악성 유언비어를 거두어내고 진실을 찾아내어야 한다. 애석하게도 공개되지 않는 사진들이 있다. 폭도생들이 파출서에 화염병을 던지며, 견찰 짭새들을 납치하여 집단 구타하며, 마구 발포하는 장면 등은 사진으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여기 몇편의 사진이 1980년 5월 18일부터 한주간 있었던 광주사태를 증언한다.

광주사태가 중반기에 접어들기까지 공포탄조차 지급받지 못했던 계엄군과 달리 시민군과 폭도생은 초기부터 막강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계엄군에 처음으로 공포탄이 지급된 때는 5월 21일 저녁 20만명의 시민군에 포위된 대대 병력(200명 추산)이 시민군의 맹렬한 사격을 뚫고 광주 외곽으로 탈출로를 열어야 했던 22일 자정 경이었다. 그런데, 시민군은 이미 19일부터 기관총, 수류탄, 폭탄 등의 화기를 갖추고 있었으며, 21일에는 군납업체에서 장갑차들까지 탈취하였으며, 그들의 총에는 실탄이 장비되어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우발적인 사건일 수 있단 말인가. 폭도들이 소지하였던 무기 바로 그것이 5.18 사태는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무장 폭동이었다는 증거이다.

이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5월 18일에 도청을 점령한 폭도생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도청 지하실에 광주시를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 분량의 다이너마이트 폭약 장치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도요타다이쥬(김대중)의 쿠데타 거사 예정일이었던 5월 22일에 때를 맞추어 대형 트럭 한대분의 다이너마이트 폭약을 준비하여 두고 있었다는데서 우리는 광주사태가 결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었음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광주사태 당시 간첩단 조직이 활동하고 있었으며, 북한군이 침투하였었다는 여러 징후들이 발견되고 있다. 다행히 소준열 장군이 한 사복차림의 군무원을 비밀리에 보내 5월 25일과 26일 양일간에 다이너마이트 폭약의 뇌관들을 모두 분리시키는데 성공하였기에 광주시민들은 참화를 면하였으며, 김일성의 남침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광주사태에 대하여 가장 큰 인식상의 오류 중 하나가 공수부대가 폭동진압의 주체였다는 인식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 등이 그런 착각을 유도한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 그것이 시위였든 폭동이었던 진압의 주체는 광주 및 그 인근 지역 경찰이었다. 위의 동영상은 미국 3대 방송사 ABC, CBS, NBC가 1980년 5월 22일에 보도한 광주사태 뉴스인바, 경찰과 시위대간의 충돌 장면이 동영상 시작후 1분 10초부터 2초간 보인다. 이처럼 광주경찰이 먼저 시위진압을 하다가 5월 18일 오후 3시경 기동경찰 45명이 인질로 납치되니깐 광주경찰서가 광주향토사단에 지원을 요청하였던 것이며, 광주향토사단이 그 예하부대였던 7공수 2개 대대를 보내 주었었던 것이다.

지난 여름의 광주사태 때 쇠파이프와 돌맹이 외에는 비무장이었던 시위대 수가 7천명만 되어도 전경 이만 명으로도 당해 내지 못함을 우리는 보았다. 그런데, 광주사태의 경우 비무장 시위대가 아니라 무장시위대였으며, 그 수도 광주사태와 비교도 안되는 수였다. 그러니 7공수 2개 대대 2백여명으로 막을 수 있는 시위가 아니였으므로 19일 11공수가 추가 지원되었으나, 여전히 진압의 주체는 광주경찰서였으며 광주향토사단은 그 보조적인 역할로서 11공수 병력을 배치하였던 것이다. 5월 21일까지는 진압의 주체는 광주경찰서였으며, 21일에 광주에서 철수한 공수부대는 다시 들어오지 않았으며, 그후 27일 새벽까지 광주에는 군인이 한 명도 없다가 27일 새벽 도청진압작전의 주체는 공수부대가 아니라 20사였다.

5월 22일부터 폭동진압의 주체가 계엄사가 되는데, 그 이유는 5월 22일 해방구가 설치되자 광주경찰서가 시민군 지휘 하에 놓였기 때문이었다. 쉬운 말로 광주경찰이 반군의 지배를 받는 처지에 있었던 것이다. 즉, 광주에서 반군에 의한 군정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중국의 군사독재자 모택동의 중공군도 그 출발은 시민군 형태였으며, 점령지역에 해방구를 설치하여 영토를 넓혀나갔던 것이며, 쿠바의 군사독재자 카스트로가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켰을 때도 시민군을 도시 게릴라로 동원하였던 것이다. 광주사태 주동자들은 월맹과 쿠바의 도시 게릴라 방법을 그대로 본땄던 것이므로 광주사태 당시 해방구 설치의 의미는 시민군 군정이었으며, 광주경찰이 그 지배 하에 있게 되었으니 그때부터 계엄사가 진압의 책임을 전적으로 떠
맡아야 했었던 것이다.

광주사태 당시 동원되었던 기동경찰이 공수부대로 언급되는 실수가 지난해 7월의 KBS 방송에서도 있었다. 기동경찰이 최류탄 발사하는 장면을 방영하면서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 운운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위의 사진은 왜 종종 광주시민이 광주시민군을 공수부대로 오인하였었는지 보여주는 한 예이다. 1988년 광주청문회 때 이해찬이 북한군 사진을 들고나와 광주시민군 사진이라고 사기쳤을 때 광주시민 모두 침묵하였던 것으로 보아 광주시민 대다수는 각 군의 군복 식별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시민군의 만행을 공수부대의 만행으로 언급한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그리고 시민군도 위의 복장 차림의 시민군과 시가전을 치루었다는 증언을 한다. 즉, 시민군 스스로도 복장으로는 피아를 구별치 못했던 것이다.

위 사진을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라. 5.18무장단체가 철모를 썼다는 것은 전투를 하겠다는 것이다. 저 군모는 기동경찰의 군모로 보이나 총을 들었을 때 그 의미는 사뭇 달라진다. 더구나 군용트럭을 타고 이동할 때 그 의미는 더욱 달라지는 것이다. 군용트럭을 타고 이동한다는 것은 병력의 이동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군용트럭으로 이동하는 병사들은 모두 군인인 줄로 안다. 그러나, 저 병사들은 복장이 괴이하다. 저런 복장은 도시 게릴라 방법을 위해 필요하였는가 아니면 민주화운동을 위해 필요하였는가? 그리고, 모두 장발이다. 탈북자들 및 탈북군인들은 북한군 특수부대가 머리를 몇달 기른 뒤 광주에 투입되었으며, 시민군과 국군 비슷하게 위장하였다고 증언한다. 5.18측은 저들의 복장에 대하여 무어라고 설명하는가? 5.18측 설명이 있기 전까지는 우리는 저들을 5.18불순세력이라고 불러야 한다. 시민군 전체가 불순세력이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지만, 시민군 중에 불순세력이 끼어 있었다는 징후이다.
UH-1 이로쿼이 헬기는 공격 헬기도 아니고, UH-1 이로쿼이 헬기는 수송헬기이다. 고로 광주사태 때 UH-1 이로쿼이 헬기로 대지 사격을 하지 않았다.
AH-1 코브라 공격헬기로 대지 사격을 했다면 믿겠는데, AH-1 코브라 공격헬기 광주사태에 출격하지 않았다.
기동경찰로 위장한 5.18광주 시민군
전북대학교 폭도생과 조선대학교 대학생 폭도생을 이끄는 도요타다이쥬(김대중) 야전 사령관 모습
아래 사진은 광주사태 전북대학교 포도생들과 조선대학교 대학생 폭도생들이 군용트럭과 군용지프차 탈취해서 대단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전북대학교 포도생들과 조선대학교 대학생 폭도생들이다.  
아래 사진은 광주사태 전남대학교들과 조선대학교 대학생 폭도생들이 군용 차륜형 장갑차와 군용트럭까지 탈취해서 감시반 차량이라 참으로 기고만장 통곡 할 노릇이다.
윤상원이 이끄는 폭도생들이 광주 시민의 눈과 귀를 막기 위해 광주 MBC 방송국에 방화한 시간은 5월 19일 15:30 이었다.
광주사태 때 전대갈 전통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광주에 난리 났다는 정보를 얻고, 처음에는 광주에 군인들 고작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서 군인들을 시위 진압용 투구와 방패 정도만 가지고 나섰다. 김대중(도요타다이쥬) 예하에 조선대학교 폭도생들이 소병기 총으로 군인들을 쏴 죽이니까.

아래 사진은 전대갈 전통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광주사태가 큰 사건이 아닌 줄 알고, 군인들을 광주시내로 급파 시킬 때 고작 시위 진압용 투구와 방패로 각 종 소병기 소총으로 중무장한 조선대학교 대학생 폭도생 잡기 위해서 있는 군인들 모습이다.

피곤함에 지친 군인들 모습
아래 사진들은 광주사태 이렇게  고작 시위 진압용 투구와 방패로  각 종 소병기 소총으로 중무장한 조선대학교 대학생 폭도생 잡을여고 하다가, 오히려 군인들이 조선대학교 대학생 폭도생들한테 총맞아 순직이 된다.
아래 사진은 전대갈 전통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광주사태 진압하기 위해서 군인들을 고작 시위 진압용 투구와 방패로 조선대학교 대학생 폭도생 잡자고 하다가 군인들은 낭패를 보고, 어쩔 수 없이 공수특전사들을 긴급히 광주시로 내려 보낸다. 뒤늦게 조선대학교 대학생 폭도생들 잡기 위해서 급파 된 공수 특전사들의 모습이다. 

공수 3. 7. 11여단. 31사단. 20사단 등 5개 관련부대(부대명은 이미 공개돼버려 그대로 쓰기로 한다. 지휘관들의 이름도 마찬가지)에서 광주사태에 참여하였던 23명의 현·전직 군인들을 만났다. 공수여단장, 계엄분소장, 참모장, 대대장, 지대장, 운전병, 하사관, 부상자 등등…. 연 3백 시간에 걸친 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그 들이 「인식하고 있는 광주사태」를 여기에 소개하려고 한다.
아래 사진은 공수특전사들이 조선대학교 대학생 폭도생들 잡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광주사태 때 조선대학교 대학생 폭도생들 이런식으로라면 검문 검색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였다. 이런식으로 하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군인들이 조선대학교 대학생 폭도생들한테 총맞아 순직 당할 뻔했다.
이렇게 검거 된 조선대학교 대학교 폭도생들이 자칭 민주화열사라고 깝치고 있고, 민주유공자가 되어 보훈처에서 보상금 매월 꼬박꼬박 수령을 타 먹는다.

폭도생들 중 다수가 군복을 입고 지프차를 타고 있었기에 광주 시민들은 군인과 시민군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희생된 광주시민들 중 대다수는 폭도생들의 총에 희생되었기에 우리는 시민군의 정체를 보다 정확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5월 27일 새벽에 폭도생들의 손에서 광주시를 되찾아 광주시민들에게 돌려준 시민군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시민군이 한주간 어지럽힌 광주시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이었다.

5월 27일 아침 부지런히 광주시를 깨끗하게 청소한 계엄군이 제일 먼저 한 일은 광주시민들에게 쌀을 배급하는 것이었다. 5월 22일 아침부터 5월 27일 아침까지 폭도생들의 해방구 치하에서 광주 서민들은 극심한 생필품 부족난을 겪고 있었다.

광주사태 당시에 공수특전사들이 폭도생들 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암판 봐도 광주사태 한달 뒤에 끝이 도요타 다이쥬와 전대갈 전통 전두환이와 이쯤해서 마치자고 해서, 맨 마지막에는 짜고 전투고스톱을 친 것 같다.

그리고  미해군 제 7함대 소속 미드웨이호 항공모함이 광주사태 때문에 한반도서 전쟁이 날지 몰라서 부산 7부두에 긴급히 와서 정박을 하기도 했다.
광주사태 때문에 오늘 날 이 나라 개한망국 국가 안보 유비무환 헛점 구멍이 생겼다.

광주사태 이전에는 전국구 각 지방 경찰서와 파출소에 소병기 소총들이 엄청 많이 배치 되어 있었다. 광주사태 끝이 나자 마자 전국구 각 경찰서와 파출소에 예비군을 위해 비치 된 소병기 소총들을 다들 없애 버린다. 전국구 각 경찰서와 파출소에 비치 된 소병기 소총들 없앤 이유는 광주사태처럼 경찰서로 진입해서 소병기 소총 탈취해서 분란을 일으킬까 싶어 없애 버렸다.  총병기 소총들 가까운 경찰서 및 파출소에는 없고, 먼 군 부대 중대에 소병기 소총들이 가 있다. 

광주사태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밖에서 들어오는 침략을 막은 것도 아니고, 광주시내에서 소란을 피우다가 끝이 난 사건 일 뿐이다.

김영삼(김앵삼)이 자기 아버지 고향부터 김영삼(김앵삼)이 윗 선대 종친회 선조 묘가 전남 고흥군에 있잖나~

김영삼(김앵삼)이가 전남 편을 든다고, 김영삼(김앵삼)이 대책 없는 놈이다.
김앵삼이가 전대갈 전땅크 전두환이와 물노통 노태우을 감옥으로 보내고, 5.18 광주사태를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왜곡 시키면서 바꾸어 놓았다.
김영삼(김앵삼)이 김녕 김씨 종친회 할 땐 전남 고흥군에 가서 한다. 김앵삼이 아버지 진짜 연고는 전남 고흥이다.
김영삼(김앵삼)이 어릴 때 전남 고흥에서 아버지 따라 경남 거제로 살로 왔다. 김영삼(김앵삼)이 어찌보면 전라도 깽깽이 같으면서도, 김영삼(김앵삼)이 어찌보면 경상도 보리문댕이 반반 썩어 놓은 티기이다~그래서 김영삼(김앵삼)이 정권 때 전라도를 발전 많이 시켰다.

임을 위한 행진곡
 / 박진광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덧글

  • 명탐정 호성 2019/02/18 13:55 # 답글

    실제 김대중 내란음모도 내란음모가 전두환의 반헌법적인 행동에 대항해서 무죄이지


    조작으로 무죄난게 아닙니다.

    실제 판결문 전문에 그렇게 나옴
  • 首露王 遠代孫 金鉉佑 2019/02/18 16:51 #

    광주사태이지, 광주민주화운동은 결코 아닙니다.

    광주사태 원흉 주범 도요타다이쥬(김대중) 국가내란 분란 국가보안법 죄 적용시켜 현재 국립 현충원에 안장 되어 있는 묘를 파 헤쳐 버려야 됩니다.



  • 광견프레싱 2019/02/20 14:24 # 삭제 답글

    518은 폭동이 맞습니다!!!! 찾아보세요!!
  • 首露王 遠代孫 金鉉佑 2019/02/23 17:31 #

    벌써 알고 있었습니다.


    광주사태이지 광주민주화운동은 결코 아닙니다.

    광주사태 당시에 조선대학교 대학생 폭도생들이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보통 두껍게 깔은 거 아니고, 뻔뻔하게 지금은 민주열사라고 민주유공자가 되어 보훈처에서 수백만원 매월 타 먹습니다.

    진실은 언제가는 밝켜 집니다.


  • 잘생긴 바다사자 2019/03/01 23:04 # 답글

    학교에서는 광주가 민주화운동이며 전두환의 지시로 광주 시민들을 학살했다고 배웠습니다.

    이 글을 보니 그건 다 미화되고 왜곡된 내용이였네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저는 세뇌교육을 받고 있던거였습니다.

    정말 소름끼치지 않을수가 없네요.

    다른 사이트에서도 광주시민들이 총기를 탈취해서 불법으로 시위를 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게 맞는 거였습니다.
    지금 보니까 더 심한 짓이였네요. 김대중의 선동으로 하마터면 빨갱이 나라가 될 뻔 했습니다.
  • 首露王 遠代孫 金鉉佑 2019/03/03 20:11 #

    광주사태에 대해서 많이 알려 주세요.

    뻔뻔스러운 것은 폭도생들이 오늘 날 민주유공자가 되어 쓰레기 보훈처에서 보상을 날로 받습니다.
    이거 잘 못 되어도 한 참 잘 못되었습니다.




  • 지성의 전당 2019/03/11 15:50 # 답글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 首露王 遠代孫 金鉉佑 2019/03/12 19:03 #

    광주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광주사태 폭동 사건이라는 것을 새삼 느껴 질 겁니다.

    이 놈의 나라는 현재도 그렇고 과거 역사 왜곡 시키는 것을 밥 먹듯이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즉, 자고 일어나면 역사 왜곡 시키는 것을 아주 우습게 생각을 합니다.

    5.18광주사태 말고도, 다카키마사오(박정희)5.16군사내란쿠데타를 지금은 5.16군사정변이라고 어린 학생들한테 가르치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 He,r-story 2019/03/21 20:15 # 삭제 답글

    감옥에 있는 자가 직접 지휘를 하고 광주에 밀교를 내리고 북한 남파 요원이 남한 그것도 광주까지 대량의 군사를 이끌고 내려왔네요..
    군대를 갔다 왔으면 알 것입니다. 전쟁에서 패한 장수는 용서하지만 경비를 실패한 장수는 사형이라고...
    그것도 버젓이 자랑이라고 광주 시민과 함께 죽이고.. 잘했다고 하네요..
    그러나 정작 북한군은 없네요.. 북한군 그렇게 대단한 군대를 가졌나 보네요..
    대학생들이 그렇게 대단하게 싸웠다는 거네요.. 지역경찰도 통제 못하는 그런 무능한 정권이었네요..
    군사 쿠테타를 쉽게 하니 그런건가.. 군기가 해이해 졌나 봅니다.
    폭도를 저렇게 힘들게 제압하는 걸 보니...

    그나 저나 북한군 하나라도 잡았나? 같은 시기 전에 대구나 경상도에서 학생들이 반대 폭동을 일으켰는데... 거기는 조용히 넘어간 걸 보면... 거기도 북한군이 대단하게 폭동만 일으키고 유유히 빠져 나간 거네요..
    경비를 책임지고 있던 군, 지역 지휘 대장들은 모두 책임을 물었겠죠? 아무튼 북한군 대단하네요..
  • Oso정도는입만갖고텀 2020/05/18 17:16 #

    언덕정도는 손쉽게 박살내는 아메리슘 총알도 만드는 나라입니다. 정말 대단한 군대죠.
  • 쯧쯧 2019/03/24 16:26 # 삭제 답글

    님의 글과 똑같은 글들이 인터넷이 수도없이 돌아다니는 군요. 같은 글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복사되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 에이프릴 2019/04/15 11:47 # 삭제 답글

    전라도것들이 못이길 상대와 싸우는거 보신적 있는분 ? 폭도새끼들이 군인들에 맞서 저렇게 용감하게 싸운 이유는 그당시 부산에 미국 항공모함이 전두환 죽이러 오고있다는 찌라시 보고 지들이 이길줄 알았던겁니다. 전라도는 100% 강하면 숙이고 약하면 밟습니다. 민주화운동 못해요.
  • 전라도광주사람 2020/05/21 12:06 # 삭제

    전라도가 얼마나 고집이 센데요! 민주회ㅏ운동 충분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님은 전라도 사람임?
  • 진상규명 2019/04/18 00:03 # 삭제 답글

    이모든건 진상규명으로 밝혀지겠죠? 무조건 북한군 소행이다 폭도들이었다만 반복할 뿐 헬기사격과
    전두환의 지시로 내려온 게엄군 이야기는 없네요...
    무조건 뭐만 하면 빨갱이라고 세뇌 받아온.. 제주 4.3사건부터 지긋지긋하게 내려온 이데올로기를 이용한 정치 공작.. 눈과 귀가 있으면 그날의 진실을 광주에 직접 내려와서 듣고 보세요..
    이런 의미없는 주작글만 복붙하지 마시고
  • 거짓은싫다 2020/05/21 11:47 # 삭제 답글

    광주사태가 아니라 광주민주화운동입니다. 이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미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젠 광주민주화운동을 빨갱이 프레임으로만 보지 마시고, 진실을 보세요.
  • 首露王 遠代孫 金鉉佑 2020/05/21 15:25 #

    5.18광주사태 처음 시발점 순서대로 사진을 올려 놓았으니 참조 하세요.


  • ㅇㅇ 2020/05/23 09:42 # 삭제 답글

    역사좀 왜곡하지 마라..이런 말도 안되는 글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네...학생들이 보고 배울까봐 겁난다 진심
  • 首露王 遠代孫 金鉉佑 2020/05/24 19:47 #

    난 역사를 왜곡 하지 않았습니다.

    이 나라 역사는 1960년에서 1970년 사이에 역사가 전부 왜곡 됩니다.
    나라 팔아 먹은 이완용의 조카손자 이병도에 의해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역사를 왜곡 시켜 놓았습니다. 즉. 이완용이는 나라 팔아 먹고, 그 밑에 조카손자 이병도는 나라 역사 왜곡 시키면서 나라땅을 팔아 먹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친일파 이병도 역사학자는 식민지사관 걔념식으로 역사를 왜곡 시켜 놓았습니다.
    친일파 역사학자 모임 이병도 가필두로 진단학회가 아주 저질 나쁜 놈들입니다.
    그리고 삼국유사는 일본에서 왜곡되어 가지고 온 소설 역사서 입니다.

    제목: 이 나라 진실의 역사
    http://kappa352.egloos.com/948613
    읽어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 으악 2020/05/30 12:20 # 삭제 답글

    광주사태가 폭동이었군요!!! 무지한 저를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점점 좌파에 진절머리가 나고 역겹습니다.
    이번투표도 중국과 합작한 조작인게죠. 여론을 봐도 민주당이 압승할 이유가 없습니다.
    518 은 공산화 폭동이었군요 감사합니다.
  • ㅇㅅㅇ 2020/06/01 19:54 # 삭제 답글

    솔직히 폭동이라고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이라고도 못 하겠습니다.
    사태가 맞습니다
  • ㅇㅅㅇ 2020/06/01 19:54 # 삭제 답글

    마치 지금의 조지 플루이드 사태와 닮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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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수로 어여쁜 나이 어린 내 마눌 박보영


♥ 억수로 어여쁜 이뿐

나이어린 내 마

박보영이는 하느님과

동기 동창생이며, 부

님보다는 더 높고, 떠오

눈부신 양과 같

,세발에 쨉도 되

지 않고 ,일개 따까리

입니다.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어도 그것은 억수로 어

여쁜  이나이어린 내 마

눌 박영의 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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